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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행복은 당신 안에 있다

햇살 아빠의 생각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16.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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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해도 많이 기울어 하늘이 높아졌는데
한낮의 늦더위가 가는 여름의 아쉬움을 잊게 만듭니다.
 
요즘 스스로 어둠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적지 않아 보입니다.
햇살 아빠도 마찬가지로 어둠 속에 있어서 이런 분들이 더 눈에 들어오지 않나 싶습니다.
"어둠 속에서 빛은 더 밝다"는 말이 있습니다.
혹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둠 속에 갇혀 있다면,
다음 글을 읽어보시고 어둠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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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때문에 동굴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보물은 영원히 찾을 수 없다.  -조셉 캠벨
 
인생에서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할 때, 당신은 그 원천을 어디에서 찾는가? 그것은 어둠 속에 있다. 어둠 속에는 무한한 창조의 에너지가 숨 쉬고 있으며, 그것은 온 우주와 우리 삶의 원천이다.
좌절과 절망의 순간 혹은 육체적인 고통에 맞닥뜨렸을 때 어둠 속으로 들어가면 자아를 되찾고 삶을 재정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무(無)'의 상태에서 움직임을 멈추고 모든 질문에 대한 답과 평화를 찾을 수도 있다. 사람은 자신의 진정한 가능성을 발견하는 순간부터 스스로를 새롭게 창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을 비우고 새로운 그림을 그려야 한다.
나는 강의를 할 때 종종 흰 종이에 검은 점을 찍고 학생들에게 무엇이 보이는지 묻는다. 그러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검은 점이 보인다고 대답하고, 일부는 검은 점이 찍힌 흰 종이가 보인다고 말한다.
두 번째가 정확한 답이다. 이제 두려워 말고 어둠 속으로 들어가 자기만의 블랙홀을 발견하고 새로운 에너지와 진정한 깨달음의 빛을 찾아 나오자. 그 순간부터 우리에게 어둠은 무덤이 아닌, 새로운 탄생을 위한 자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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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오늘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발견한 글입니다.




남아프리카 태생인 사진작가 데렉 비에르만이 1993년 북인도 지방을 여행하면서 많은 구루(스승)들을 만나 다음 다섯 가지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대답을 들었다.

첫째, 신앙이란 무엇인가.
둘째, 진리(진실)이란 무엇인가.
셋째, 실재란 무엇인가.
넷째, 사랑이란 무엇인가.
다섯째, 상매(사마디)란 무엇인가.

아래의 옮겨 적은 글은 스와미 프리마난다 바바의 대답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 우리가 하느님을 잊는다.
만일 하느님이 우리를 단 1초라도 잊으신다면, 그 순간
우리의 모든 존재는 끝장이 날 것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우리의 모든 충동, 모든 표현, 모든 행동 안에 현존하는 이가 그분이시다.


신앙(faith)이란 당신과 하느님 사이의 관계다.
당신이 그 관계를 느낀다면, 그때에 신앙과 사랑이 올 것이다.
우리는 우리 맘대로 이곳에 오지 않았다. 이리로 오지 않을 수 없어서 왔다.
어린아이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사랑하도록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몸으로 느낀다.
굳이 신앙을 주입시킬 필요가 없다.
일단 당신과 하느님의 관계를 알게되면, 당신은 모든 것을 성취할 것이다.
일 삼아 헌신의 길을 떠날 필요가 없다.
신앙과 행복은 길의 끝에 있지 않고 길과 함께 있다.
그 여정은 달콤한 행복을 맛보기 위해서, 그것을 목표로 삼고 가는 그런 것이 아니다.
당신이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어떤 조건들 아래 있든,
당신 지금 있는 곳에서 행복은 당신과 함께 시작된다.
당신의 행복은 당신 바깥이 아니라 당신 안에 있다. 그것은 마음의 상태다.
진리(진실)는 진리(진실)의 이름이다. 존재하고 있는 사물이 곧 진리다.
누구에 의해서도 서술되지 않는 것, 그것은 진리다.
태초에 세계가 있었다. 같은 세계가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이 모든 눈에 보이는 모양들(form)이 다 사라지고 녹아 없어진다 해도
진리는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있었고 있고 있을 터인즉, 그게 바로 진리다.
진리를 알게 되기까지 당신은 생사(生死)의 소용돌이와 이 세상 온갖 번뇌 고통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이 진리를 알라고 가르쳤다.
당시에는 아주 많은 남자 신들과 여자 신들이 있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우뚝 서서 말했다.
"이 모든 겉모양들 뒤에 오직 한 진리가 있을 뿐이다."
이렇게 말했기 때문에 독배를 들어야 했지만 그래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늘에는 소크라테스를 사람들이 예배한다. 모든 종교, 모든 텍스트가
'너 자신을 알고'고 말한다. 이것이 참지식의 씨앗이고 이것 없이는 새싹도 없다.
당신 인생의 목석은 당신 자신을 알고 행복을 얻는 데에 있다.
영원한 행복을 위하여, 당신이 어디에 있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외부의 도움을 받으려고 할 필요도 없다. 모두 당신 안에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은 당신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것뿐이다.
일단 자기를 옳은 방향에 세우면 반드시 깨달음을 얻는다.
깨끗하지 못한 마음은 순결해질 필요가 있다. 마음을 순결하게 하기 위해서는,
간단한 말 한 마디와 사소한 행동 하나가 엄청난 차이를 만들기에
생각과 행동에 아주 조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오감(五感)으로 느껴지는 것들에 대해서도 신중해야 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앎'을 오감으로 지각되는 것들에 제한시킨다.
그러나 지각이야말로 우리를 잘못 이끌기 쉽고,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감각은 고삐를 죄어야 하는 말들과 같다.
이들 다섯 가지 감각은 우리를 엉뚱한 방향으로 이끄는데,
한 번 그 촉수(觸手)에 걸려들면 좀처럼 만족할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을 추구한다.
참행복을 얻고자 평생을 애쓰지만 그 모두가
하느님을 비추는 거울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해야할 일은 방향을 돌려 다른 쪽을 바라보는 것뿐이다.

친철과 사랑은 동전의 양면이다. 친절을 보는 그곳에서 당신은 사랑을 발견한다.
사랑은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무엇이다. 우리 모두에게 사랑은 본디 있는 것이다.
당신은 다만 신(神)과 그를 따르는 자들 사이의 관계를 알고 그것을 실현해야 한다.
당신이 어느 종교에 속해 있다면 그 종교 안에서 많은 성인(聖人)들이 걸어간 길을 좇아서
걷되, 맹목으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맹목적인 추종은 다만 자기를 속이고 의심하게 할 뿐이요,
나아가 믿음과 사랑을 파멸시킨다.
의심이 당신 가슴에 자리잡는 순간 당신의 평화와 행복은 사라진다.

톨스토이는 <한 사람에게 필요한 땅을 얼마나 될까?>라는 책을 썼다.
그가 말하는 땅이란 우리가 추구하는 바 모든 재물을 상징한다.
정말 한 사람에게 필요한 땅이란 우리가 추구하는 바 모든 재물을 상징한다.
정말 한 사람에게 필요한 땅은 얼마나 될까?
사람들은 꿈속에서도 탐욕에 이끌리고, 개인에게 그런 것은 국가들에도 마찬가지다.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다.
전체 우주가 그분의 품이다. 온 은하계가 그분 품안에 있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 것만을 주신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우리는 모두 함께 그분과 하나되는 데 실패하고 있다.
그분은 우리 뜻대로 움직여주시기를 바라면서, 그분 뜻을 따르려고는 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느님께 이것도 바라고 저것도 바란다.
그러면서 그분을 좋으신 분이라고 부른다.
하느님은 무엇이 우리에게 더 좋은지를 아신다.

- 스와미 프리마난다 바바(Swami Premananda Baba)

*출처: <살아갈 날들을 위한 기도>에서 재인용 화니북스, 윤구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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