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이스트들의 신나는 축제' 정현경 | |||||||||||||||||||||||
[하느님을 사랑한 여성들-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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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장 속의 아이 1994년. 가톨릭대 신학과에 입학했던 필자는 교회 안의 여성차별을 최초로 인식하게 됐다. 그 해에 아시아 민중 신학자인 이화여대 정현경 교수의 유니언신학대학 박사학위 논문 <다시 태양이 되기 위하여>가 분도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왔다. 정 교수의 책을 접하며 필자는 여성들도 ’다시 태양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얻었다. 그녀는 책 첫머리에서 자신을 길러준 세 명의 어머니를 기리고 있다. "나를 낳아 주신 어머니 오양광(1915~), 이 세 어머니들께 이 책을 바칩니다." 정 교수의 아버지는 결혼 25년 동안 아이가 없자 자신의 아이를 낳아 줄 여자를 찾았다. 그 여자는 일제 강점기에 연인을 잃고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가난한 미혼모였다. 정 교수가 태어나 첫돌이 지나자 길러 주실 어머니에게로 가야 했다. 정 교수를 낳은 어머니는 너무나 슬퍼서 잠시 동안 정신 이상을 보였고, 당시 십대였던 그의 유일한 아들은 그 고통을 이길 수 없어서 자살하고 말았다고 한다. 벽장 안에서 울고 있던 아이는 친어머니와 갑자기 떨어진 그녀의 어린 자아였던 것이다. 30여 년 만에 친어머니를 만나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 교수는 내면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녀는 유럽이나 북미 신학자 테두리 안에서 11년 동안 신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그 신학이 그녀의 친어머니와 같이 사회적 약자인 이들에게 이해될 수 없는 언어와 사상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자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자각이 그녀를 아시아 민중들의 상처와 고통에 귀기울이는 사람으로 확실히 변모시켰다. 그녀의 신학과 사상이 진실된 힘을 주는 것은 바로 이러한 그녀의 체험 때문이다. 다시 태양이 되기 위하여 정현경 교수의 제3세계 민중신학 주인공들은 여성신학 안에서도 가장 가난한 여성들이다. 제1세계 여성신학은 유럽과 미국의 백인 여성들인 엘리자베스 휘오렌자(Elisabeth S. Fiorenza)나 로즈마리 류터(Rosemary R. Ruether) 등에 의해 주도된 것이다. 이 제1세계 여성신학 안에서도 미국 내의 소수 인종인 흑인, 히스패닉계 여성들의 경험에 의해 전개되는 신학을 구분할 수 있다. 제3세계 여성신학은 더욱 힘없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여성들의 경험을 다루는 신학이다.
신학을 한다는 것은 온전한 인간됨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녀는 우리에게 어려운 신학을 요구하지 않는다. "모든 여성은 임신과 출산을 통해 생명 창조에 동참하며, 자기 아이를 사랑한다. 여성은 생명이며 사랑이다."라는 아시아 한 여성 집단의 성찰도 들려준다. 이제는 태양에 가려 있는 달이 아니라 생명의 불길을 태우며 스스로 빛나는 태양이 되라고 초대한다. 원래 여자는 태양이었다.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그녀가 세계적인 여성신학자로 우뚝 서게 된 계기는 1991년 호주 캔버라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 기조 연설이었다. 그녀는 총회 사상 처음으로 제1세계 신학자가 아닌 아시아 여성으로서 '성령'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강의와 함께 우리 민족의 전통 문화인 '씻김굿'의 의미 안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영혼들을 위로하는 초혼제를 지냈다. 또한 사물놀이패의 풍물과 호주 원주민의 춤이 어우러지는 공연을 펼쳤다. 이로써 전세계 종교계에 큰 파장을 불러 왔다. 그 후 1997년 진보 신학의 명문, 미국 뉴욕의 유니언신학대학교 165년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아계 종신 여자 교수가 되었다. 그녀가 총회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바는 그릇된 것을 바로잡고자 도처를 떠돌고 있는 '한 맺힌 영혼들'이 바로 우리를 성령께로 이끄는 "아이콘(Icon)"이 된다는 것이다. 이 부르짖음을 들을 수 있을 때, 이 외침에 눈물 흘리는 자비하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 때, 피조물 한가운데서 활동하고 계신 성령을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이미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면 우리 안에 감추어진 소유욕인 '맘몬(Mammon)'과 끊임없이 바벨탑을 쌓으려고 하는 '은밀한 욕망'에서 회개(Metanoia)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참된 회개, 철저한 방향 전환은 '생명 중심주의'와 이분법을 넘어서는 '상호연계성'의 자각이며 '생명의 문화'로의 전환이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나누는 능력인 '연민(compassion)'을 가질 때 우리는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바꾸게 된다. 마지막으로 제시하는 성령의 이미지는 '관세음보살'의 이미지다. 관세음보살은 동아시아 여성들로부터 전통적으로 숭배 받는 사랑과 지혜의 여신이다. 관세음보살은 깨달은 존재로서 원하면 언제든지 니르바나(열반)에 들 수 있지만, 고통 받는 모든 존재가 해방을 얻을 때까지 이 세계에 머물며 힘을 주고자 한다. 살림이스트, '모든 것을 살아나게 하는 자' 정현경 교수는 타인의 고통을 나누는 생명의 문화를 꽃피우고자 한다. 인도 시인 타고르의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내 영혼아 침묵하라. 그녀는 먼저 가부장제의 소유욕과 지배욕으로 물들어 버린 지구를 가꾸어 가자고 말한다. 또한 그녀는 21세기에는 개미나 거미들처럼 호랑이와 사자 앞에 억눌려 살아왔던 '영웅적이지 못한 존재들'에 의해 세상이 바뀌어 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작은 개미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피라미드 같이 큰 억압구조에 작은 구멍들을 만들어 갈 때 어느 날 피라미드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거미들도 자기 몸에서 직접 짜낸 작은 지혜(Embodied Wisdom)들로 서로를 연결하고 포용해 나갈 때 궁극의 지혜(Sophia)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리스도는 '소피아(Sophia)'의 육화이며 우리를 성령의 힘을 통해 부르신다. 거미 여인의 지혜는 바로 '살림이스트(Sallimist)'가 되는 것이다. '살림'은 한국 여성들이 '매일 하는 집안 일'을 일컫는다. 살림이스트는 '모든 것을 살아나게 하는 자'다. 예를 들어 음식 하기, 빨래·청소하기, 아이 키우기, 꽃과 나무 가꾸기 등이다. '저 여자 살림꾼이네'라는 말은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살아나게 하는 기술과 예술과 사랑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결국 가족을 행복하게 하고 온 우주에 평화와 풍요를 가져온다. 필자 또한 요즘 튼튼하게 자라 준 아이들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는 식사와 간식을 만들어 먹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행복하고 소중한 일은 없다는 것을 체험하고 있다. 고통 받는 모든 존재가 해방을 얻을 때까지, 이 세계에 머물며 힘을 주고자 하는 관세음보살이 있다. 이처럼, 나와 타인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는 여성들이 모두 살림이스트가 되어 행복한 축제를 벌이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 도희주 (수산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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