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히 빛나는 번뇌의 몸짓
얼마 전 우연히, 13살 어린이가 추는 승무를 직접 볼 기회를 가졌다. 비록 어린이의 몸짓이었지만, 실력있는 꿈나무들의 무대였고, 다양한 전통 춤을 함께 감상할 수 있었다. 왕과 왕비들이 추었다는 기품과 화사함을 간직한 태평무, 빠른 동작과 음악이 경쾌한 진도북춤 그리고 청중들과 하나되어 무대를 휘어잡았던 소고춤이었다. 이 춤들속에서 나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은 것은 단연 ‘승무’였다.
승무는 2 m가 넘어 보이는 길다란 소매를 너울 너울 하늘로 올리며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애절함을 담았다. 한 장단 한 장단, 혼신을 다해 펼쳐 보이는 그 간절함이 좋았다. ‘번뇌는 깊어도 별빛처럼 빛나기를…’ 춤을 추는 이들도 기원했을까... 자연스레 조지훈의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로 시작하는 승무가 떠올랐다.
승무
조지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 오고
복사꽃 고운 빰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진유림 선생님의 승무(출처:진유림의 우리춤 사랑까페)
이제 입추도 지나갔다. 끝이 없을 것 같은 무더위의 기세도 입추가 지나면 약해진다. 그리고 아침저녁 서늘해진 바람으로 돌아오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춤은 이러한 자연적인 기의 흐름과 순환을 담고 있다. 장단이 느릴 때가 많고 동작도 굼떠 보인다. 그러나 단순해 보이는 손가락 동작 하나에도, 온몸의 근육이 모아져야만 표현 해 낼 수 있는 묘미가 있다. 그래서인지, 전통 춤을 꾸준히 추면 온 몸이 골고루 건강해진다고 한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도 얼마든지 직접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조지훈의 승무는 깊은 가을밤, 달빛아래 홀로 춤을 추는 여승의 모습을 그렸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깊은 밤 삼경(三更)에도 잠들지 못하고 번뇌하는 일이 있다. 그럴 때마다 긴긴 소매자락에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을 담아 허공으로 날려보내고 싶다. 그 몸짓으로 세상사에 찢겨진 지친 마음이 넓디 넓은 하늘에 닿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평안과 자비의 세계로 흘러갈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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