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만 되면, 추석과 가장 잘 어울릴 거 같은 이미지의 시인으로 김용택 선생님이 떠오른다.
김용택 샘의 시를 읽을 때마다 꼭 그곳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 바람이 이뤄졌다. 지난 봄, 나는 만사를 제쳐두고 무작정 전라선 열차를 탔다. 임실 오수역(그곳이 자신의 털에 물을 묻혀와 술취해 잠든 주인이 불길에 휩싸이 않도록 구하고 스스로는 지쳐서 죽은 개의 전설이 있는 고장이다)에서 내려 임실읍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그곳에서 다시 순창으로 가는 차로 갈아탔다.
봄 기운이 한창이었을 때였는데, 그 버스에는 언젠가부터 고향집 안방에서 나던 냄새와 비슷한 냄새가 났다. 노인이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은 나와 운전기사 둘뿐이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창밖으로 보이는 들녘이 참 깨끗하고 정겨웠다. 워낙 깊어서인지 가끔씩 보이는 최근 들어 조성된 묘역 빼고는 사람의 억지스런 손길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촌놈이라서 그런지 있는 그대로가 좋다. 새로운 집보다 정성스럽게 지어진 오래된 기와집이 좋다.
앞에 계신 어르신과 함께 내렸다(내리고 보니 내가 몇 년 전, 순창군청에 드나들 때 지나 다녔던 길이었음을 알게 됐다). 논에서는 봄 냄새나 나고 저 앞으로 섬진강이 흘러가고 있었다. 강 건너편 솔숲 속에서 그의 글 속에서 가끔 등장했던 월파정도 보인다. 저 멀리서 쑥을 캐고 있는 늙은 아주머니도 보인다. 나는 그냥 걸었다. 저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된다는 소개만 받고 여기저기 느끼면서 가는 길이 참 좋았다.진달래 핀 언덕을 본지 얼마나 됐던가? 지난해 보내드린 어머니를 따라 산으로 들로 따라다니며 진달래 꽃을 땄던 어렸을 적 기억도 떠오른다.
김용택 시인의 텃마루에서 쳐다본 섬진강은 정말 평화로웠다. 앞뒤로 산이 가로 막고 있지만 물이 있어서 답답함을 줄이면서 독서 생활을 했을 것이다. 집을 열심히 둘러보고 저녁때는 시인의 어머니로부터 맛있는 밥을 대접받았다. “예전부터 집에 찾아온 손님, 물 한 모금 대접하지 않으면 들보가 우는 법이라고 했제. 울고 들어온 사람, 웃게 해서 내보내라고 했는데, 웃고 들어온 사람 울게 해서 내보내면 못써.”생활 속에서 이미 법도를 배워버린 나이 드신 어르신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와 닿는다.
저녁밥을 대접받고 어둑어둑해지는 강둑길을 따라 나오는 길도 참 운치있고 좋았다. 밤길에 혼자 걸어도 기분 나쁘지 않을 그런 좋은 길이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다시 진뫼마을로 걸어가 그 길로 천담분교로 이어지는 섬진강길을 걸어보았다. 보스보슬 내리는 비를 피하기 위해 우산을 쓰기도 했는데, 비오는 봄 강변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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