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넘쳐나는 시대에 뭘 읽어야 할지 난감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어떤 거라도 읽고 나면 위안이 됐다. ‘친구 따라 지게 지고 장에 가는 사람’에 가까운 한 사람이 책을 고르는 방법이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가는 사람과 물건이 있게 마련이다. 꼼꼼히 파악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선택했다가 후회할 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예전보다 조금 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나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책을 고른다. 내게 좋은 책, 나쁜 책의 기준은 없다. 오로지 내게 의미 있게 다가오는 책이 좋은 책이요, 그 기준에 들지 않으면….
- 도서관에서 우선 빌려본 후 꼭 필요하다는 판단이 서는 책 위주로 구입한다. 한동안 책을 집중해서 빌려보다 보면, 내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고, 자신에게 맞는 책인지 아닌지 나름대로 기준이 생긴다. 요즘 도서관 인터넷에서 자신의 ID로 들어가면, 자신이 대출해본 책 목록이 나타나므로 그걸 보면 자신의 습성을 나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한다. 그것도 안 되면, 나름 신뢰가 가는 사람의 칼럼이나 글을 읽다 보면 등장하는 책 이야기를 메모해 뒀다가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확인해 본다. 이런 책도 바로 구입하는 것보다 곰곰이 생각해보고 구입한다. 오래된 책 가운데 절판된 책이 있는데, 왜 이런 책이 다시 나오지 않을까 궁금해질 정도로 내게 의미로 다가오는 책을 가끔씩 만날 수 있다. 나중에 추천해준 사람을 만날 때 책 선물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고르면서 고민하게 되고 그에게 또 다른 책도 추천 받을 수 있으므로.
- 좋아하는 분야의 책 말고도 다른 분야의 책도 관심을 가진다. 관심 분야 밖의 책을 한번 정도 읽다 보면,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나는 수학과 과학이라면 진절머리가 나는 사람이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접하게 되면서 과학 책의 매력을 알게 됐다. 그 이후로는 나는 물리학 관련 책을 서점과 도서관에 갈 때마 살펴보게 되고 가끔씩 구입할 때도 있다. 예전과 비교하면 크게 달라진 내 모습!
- 책을 읽다 보면, 특정 작가나 사람에 필이 꽂힐 때가 있다. 그 사람을 따라서 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그 사람이 읽은 책을 주로 읽는다. 일단 자신이 믿는 대상이므로 의심이 덜 가기도 하고 내적 동기부여도 잘 되기 때문에 효과가 좋다. 더불어 스스로 판단을 못하면, 남을 따라 하다가 자신의 재능과 취향을 발견할 수 있다.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처음에는 남이 그려놓은 것을 따라 하다가 어느 순간 자신만의 표현법을 발견해 내듯이 말이다. 더불어 독서의 방법을 알려주는 고전급에 들어산 책들이 있었다. 이런 책에서 거론하는 책은 볼 만하다.
- 어려운 책도 도전해본다. 이런 책은 독서체력 강화에 도움이 되고, 새로운 분야에 눈을 뜨게 하는 계기가 된다. 숙제 때문에 유명한 미디어 이론가의 책을 봐야 했다. 부분 부분은 어느 정도 이해하겠는데, 전체적인 맥락이 잡히지 않아 답답했다.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 새 저자가 강조하는 내용이 머리에 정리가 되면서 그 책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책을 계기로 비슷한 유형의 책을 보게 됐고, 첫 번째보다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참고로, 내적 동기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낯선 책을 읽으려면 괴롭다. 무슨 일이든 미리 스스로 ‘어렵고 재미없다’고 판단해버리면 그 일은 어렵고 재미없는 일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낯설거나 어려운 책일 경우, 미리 ‘이 책을 고른 의미, 읽어야 하는 의미’를 생각해 보는 방법이 있다. 숙제처럼 피할 수 없을 때에도 그렇게 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밖에. 억지로도 여러 번 보다 보면 좋아진다. 남녀 간의 관계처럼.
- 대형서점에 갈 때는 미리 어느 분야의 책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찾아가 해당 분야의 책을 집중 살펴보고 나서 나머지는 눈가는 대로 보고 온다. 욕심이 많아서인지 서점에 가면 참 기분이 다운될 때가 있다. 이렇게 많은 책이 나오고 있는데 고작 ‘몇 권밖에 못 읽은 이의 초라함’을 의식했기 때문일 거다. 베스트 셀러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유행가처럼 듣다 보니 좋아지지만, 유행이 지나고 나면 다시 듣지 않게 되듯이, 유행을 탈 책이라면 조심.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