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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비평으로 보는 마르코

책_추천도서/신학이야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7. 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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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마르코 복음 15장 주석(15 8-15절을 중심으로)

 

1. 들어가는 ... 1

2. 15 서사비평... 2

2-1. 서사비평이란? 2

2-2. 내레이터... 3

2-3. 배경... 4

2-4. 플롯... 5

3. 6-15 세부비평 (등장인물을 심으로) 6

3-1. 니코스 카잔차스키와 마르코... 6

3-2. 조르바... 7

3-3. 예수... 8

 

 

1. 들어가는 글

“Long long time ago~~”, “Ones upon a time~~”,

이 말은 밤하늘에 수없이 빛나는 별들처럼, 잠들어 있는 우리 영혼을 깨우는 전령사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속삭임을 들으면, 마음 안쪽에 꼭꼭 숨겨두었던 상상의 빗장을 풀고, 귀를 쫑긋 세울 것이다. 본인도 세 아이들과 함께, 몸과 몸을, 눈과 눈을 맞대며 많은 이야기를 읽었다. 사랑을 담은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이, 영혼과 마음이 쑥쑥 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내러티브(narrative)의 매력이다. 이렇게 역사의 소중한 사연들은, 내러티브를 통해 우리의 삶에 뿌리깊게 녹아 흐르고 있다[1]. 또한,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과 그리스도인의 신앙 핵심을 전해주고 있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도, 이러한 내러티브가 많은 영역을 차지한다[2]. 나는 이번 마르코 복음 15장 주석을 내러티브적 특성의 서사비평으로 준비하였다. 그리고, 인상 깊게 읽었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3], 같은 책에 실린 이윤기[4]의 비평을, 156-15절과 비교하는 세부주석을 하였다. 이제 마르코가 들려주는 15장의 예수 수난과 죽음 이야기속으로 들어가 보자.

 

2. 15장 서사비평

15장은 마르코 복음 전체구조에서 절정에 해당한다. 갈릴래아에서의 치유와 선포사역을 하던 1(1,1-8,26), 예루살렘에서의 예언되었던 고난과 죽음, 부활이 나오는 2(8,27-16,20)중에서도, 가장 긴장되는 사건이 일어난다[5]. 로마제국의 식민지 통치 아래 있는 정치사회적 배경으로 인해 복음서에는 억압과 위협의 분위기가 초반부터 깔려 있다[6]. 또한 수난과 죽음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예수를 통해 1장부터 숨겨왔던 메시아 비밀의 핵심인 수난 받는 종의 모습이 15장에서 명백히 드러난다(1, 21-28참조).

 

2-1. 서사비평이란?

이종록은, M.A. 포엘이 지은 『서사비평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역자서문에서 지난 1세기 동안 지속되어 온 성경연구의 주도적인 방식은 역사비평 방법이었다. 창문을 통해 보는 통찰을 중시하는, 이 방법으로 성서학은 놀라운 발전을 했다. 그러나 이는 모세가 홍해바다를 가르고, 예리고 성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매력적인 이야기 세계에서, 항상 현실로 돌아오라고 강요하였다. 마태 13,52절에는 하느님 나라의 제자가 된 율법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 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는 말씀이 있다. 이제 역사비평적 방법뿐만 아니라, 성서본문을 거울처럼 보며,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문학비평(서사비평)을 성서연구에 함께 사용하고자 한다. 그래서 통합적이고 완벽한 성경읽기를 시도해 보고자 한다[7]고 밝힌다.

서사비평의 주된 요소에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내레이터’, 이야기가 전개되는 공간적시간적정치적 배경’, 갈등이 드러나는 플롯’, 그리고 각 인물의 성격이 두드러지는 등장인물과 중요한 문학요소로서 아이러니가 있다[8]. 이제 15장 전체를 서사비평의 관점에서 살펴보며, 본문을 통해 하느님께서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계시의 사건 속으로 들어가 보자[9].

 

2-2. 내레이터

당연히 마르코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서사비평에서 내레이터는 저자가 아니다. 내재된 저자가 효과적인 이야기 전달을 위해서 전지적 작가시점의 내레이터를 등장시킨다. 내재된 저자는 실제 저자가 서사이야기에 만들어 놓은 인물이다. 즉 한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읽을 때는, 그 이야기의 저자에 대한 인상을 가지게 되는데, 그가 바로 내재된 저자이다[10].

(성경읽기, 15,1-5:16-32)[11] (자신만의 내재된 저자를 찾았나요?)

15장에서 본인의 내래이터는 침묵이라는 화두(話頭)를 본인에게 던져주었다. 내레이터는 예수의 침묵으로 오히려 예수의 정체를 밝히는 수사적 질문과 성경인용을 사용한다. 진리의 수호자가 되신 주님께서는 억눌린 진리를 지키고자 빌라도 앞에서 침묵한다(요한 18, 37-38참조)[12]. 흠이 없는 침묵, 침묵함으로써 예수의 뜻이 더욱 잘 드러나는 문학적 요소로 아이러니 기법도 볼 수 있다. [13]. 사실, 이 아이러니 기법은 마르코 복음에서 아주 돋보이는 요소이며, 언어적 아이러니(verbal irony: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어떤 뜻을 전달하기 위해, 그 뜻과 정반대되는 말을 하는 것)와 극적 아이러니(dramatic irony: 등장인물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한 생각이 실제상황과 차이를 보일 때)가 있다. 예를 들어 15 26절에서 유대인의 왕이라고 유대지도자들과 군인들이 예수를 조롱하는데, 예수의 현 상황은 세속적 의 모습과는 정반대이다. 극적 아이러니는 마가복음의 전체구도를 이루며, 하느님의 다스리심이 마르코 복음의 모든 등장인물이 기대하는 것과 다름을 밝힌다(유대지도자들은 본인들이 권위를 갖기를 원했고, 예수의 제자들도 예수의 부활을 체험하며 변화되기까지, 진정한 메시아를 이해하지 못했다. 명예와 부와 권력을 내심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14]. 이러한 상황은 십자가 밑에 거의 남아있지 않았던 많은 제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15장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2-3. 배경

배경은 이야기의 중요한 주제를 전달하고, 이야기 전체의 틀을 잡아준다. 15장의 시간적 배경은 안식일이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것을 기리는 유월절 축제는, 마치 작은 불만 당겨도 폭발할 것처럼 무척 들떠 있는 대대적인 국가적 축제로서, 긴장된 분위기를 조성한다[15]. 15장의 공간적 배경은 대부분 공적인 영역이다. 총독공관과 그 뜰, 갈바리 산, 십자가위다. 재판과 십자가 처형은 예수가 공개적으로 수치를 당하는 극단적인 장소가 된다[16]. 지리적 배경 또한 당신이 태어나고 자란 친숙한 갈릴래아가 아니다. 당신에게 적대적인 마음을 품고 있는 대사제와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 있는 예루살렘이다. 이 모든 정치적, 시간적, 지리적, 공간적 배경은, 하느님이 주신 소명을 이루려는 예수에게, 당신 혼자만이 감당해야 하는 고독의 무게로 다가온다. 철저한 그의 실존적 공간이 된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신 앞에 선 단독자이다. , “한 인간이 완전히 자기자신, 한 개별적인 인간, 이 특정한 개별인간이 되는 것을 감행하는 것은 극히 중요하다. 이 모든 엄청난 긴장과 이 모든 엄청난 책임을 떠맡고 홀로, 신 앞에 서는 것 말이다.”라고 고백한 상황[17]의 정점이다.

성경읽기 (15,33-47) (계속되는 예수님의 고독을 떠올리며 본문을 읽어보자)

예수의 고독은 15 34-37절에서 결정적으로 나타난다. 선인(善人)으로 극심한 고통을 인내하심으로서, 38-39절의, 성전 휘장이 찢어지는 것과, 이방인 백인대장의 입에서 참으로 이 사람이 하느님의 아들이셨다라는 고백을 이끌어낸다.

38절의 성소와 지성소의 공간을 가르던, ‘성전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두 갈래 찢어지는사건과, 1 10절에서 예수가 세례 받고 물에서 올라오시자,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내려오시는사건은 거룩한 곳의 분리를 기록하고 있다. 성정휘장은 하늘과 비슷하다. 세례 때는 예수님만이 하늘의 갈라짐을 보았지만 이제는 그의 십자가죽음과 함께 모두에게 계시되었다[18]. 하느님의 특별한 현존의 장소로 생각되어, 대사제들도 일년에 한번 들어갈 수 있었던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성전과 성전관리인, 로마제국과 결탁한 지역관리들에 대한 심판이며, 두 번째는 예수의 죽음에 의해 이제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을 확증해 준다[19]. 예수는 자신에게 적대적이었던 모든 정치적,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십자가 죽음으로 극복하고 이 세상을 하느님의 은총이 흘러 넘치는 배경으로 바꾸어 놓았다.

 

2-4. 플롯

플롯은 사건과 관련이 있다. 사건의 연결과 드러남이며 그 핵심에는 사건을 일으키는 등장인물간의 갈등이 깔려있다. 갈등은 내러티브가 지향하는 중요한 가치나 신념이 무엇인지 보여준다[20]. 15장도 발단, 전개, 절정, 결말의 일반적인 이야기 연결을 따르고 있다. 심판 받고 수난 받고 죽은 후에 묻히신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실현되는 15 33-40절은, 복음서 서두인 1 15절부터 예수가 선포했던 하느님의 다스리심이 도래했다와 이 세상간의 갈등이 확실한 결과로 나타난 사건이다.  하느님의 다스리심은 사탄이나 자연계, 유대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제자들, 심지어 예수자신에게까지 갈등을 유발했다(14,32-48 참조). 15장을 보면, 하느님의 다스리심에 대한 각자의 선택은 확실하게 갈라졌다. 유대지도자들은 율법과 전통을 지킨다는 명분아래 예수를 죽음으로 몰았고, 제자들은 예수와 함께 처형당할까 두려워 사라지고, 예수를 따라다니던 여자들만 남는다(15,40-41). 이어지는 예수의 시신을 무덤에 모시는 사건에서, 여인들은 무덤의 위치까지 확인한다(15,47 참조). 그래서 16장의 부활사건을 연결하는 고리가 된다[21].  

 

3. 6-15절 세부비평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6-15절의 세부비평은 『그리스인 조르바』의 등장인물과 함께 살펴볼 것이다. 이야기 속, 갈등사건을 대하는 등장인물의 판단과 태도를 보고자 한다. 한평생 자유를 추구한 인물을 그린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는, 책 배경인 크레타 섬에서 벌어진 과부 피살사건[22]을 볼 것이다. 먼저,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한 마르코 복음사가를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과부의 죽음을 막으려 노력했던 조르바와 모든 갈등을 끌어안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을 가져온 예수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3-1. 니코스 카잔차스키와 마르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삶에 조르바는 깊은 골을 남긴 사람으로 실제 인물이었다. 카잔차키스(1883-1955, 크레타 이라클레온 태생)는 『영혼의 자서전』에서 실제 인물 조르바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라고 부르는 삶의 길잡이를 한 사람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택했을 것이다…. 주린 영혼을 채우기 위해 오랜 세월 책으로 빨아들인 영양분의 질량과, 겨우 몇 달 사이에 조르바로부터 느낀 자유의 질량을 돌아 볼 때마다 책으로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 나는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한다 카잔차키스는 어릴 때부터 주교가 되기를 소망했고 청년이 된 후, 기암절벽의 천년성지 아토스산을 순례하며 고행자도 만났다. ‘성인이라 추앙받는, 육체를 악마와 동일시 하는 영혼지상주의자에게서 환멸을 느꼈고, 오히려 육체와 영혼의 이분법을 뛰어넘는 파계승으로부터 새로운 십계명의 열쇠를 찾았다. 그에게 영향을 준 사상가는 니체와 베르그송이며 특히 베르그송의 생의 도약 (e’lan vital)’을 완성시키는 인물로 니체의 초인을 이해했다. 카자차키스가 지향했던 궁극적인 가치의 하나는 메토이소노(聖化)’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의 상태너머로 일어나는 거룩하게 되기의 변화, 포도주가 사랑이 되고, ‘성체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메토이소노[23]. 그는 이러한 사상을 담아 터키로부터의 독립운동으로 지치고, 야성적인 특성을 느낄 수 있는, 고향 크레타 섬을 배경으로 조르바의 몇 달 간의 행적을 기록한다.

하느님의 아들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마르코는 누구일까? 예수의 직제자인 베드로의 사역을 도왔던 동역자라는 학설이 있어왔다. 그러나 마르코는 로마 세계의 헬라어권에서 가장 통상적인 이름 가운데 하나였음을 참고할 수 있다[24]. 따라서 베드로를 예루살렘의 사도전승과 동일시되는 모범적인 인물로 두고, 예수의 가르침, 행동과 고난을 설교와 연결시킨 인물로 생각할 수 있다.[25]

 

3-2. 조르바

중년이 지난 떠돌이 조르바와 그의 친구는 어느날 저녁, 마을의 아름다운 과부를 사랑했다가 결국은 자살한, 한 젊은이의 시체를 보게 된다. 시체 앞에서 과부와의 결혼을 반대했던 죽은 젊은이의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은 젊은이의 죽음이 무조건 과부 탓이라고 단정하며 분노한다. 다음은 마을 사람들의 미움을 받은 과부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지 조르바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 살펴보자.


과부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가 얼굴을 감싸쥐고 비틀거리며 교회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문턱에는 마브란도니(죽은 젊은이의 아버지)가 버티고 서 있었다. 그는 두 팔을 벌려 문을 막아 버렸다. 과부는 옆으로 비켜서서 마당의 커다란 삼나무 밑으로 다가갔다. 돌멩이 하나가 바람을 가르고 날아와 과부의 머리를 때리며 머릿수건을 찢어 놓았다. 머리카락이 풀려나와 어깨위로 출렁이기 시작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과부는 삼나무에 붙어 서면서 울부짖었다……” (중략)

하느님의 이름으로 심판한다!” 마브란도니는 이렇게 소리치며 성호를 그었다. 그러나 그 순간 우렁찬 목소리가 우리 뒤에서 터져 나왔다 칼을 내려놔, 이 백정 같으니라고!” 모두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마놀라카스(죽은 젊은이의 사촌)도 고개를 돌렸다. 조르바가 그의 앞에서 시퍼렇게 화를 내며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중략)

조르바는 마놀라카스를 땅바닥에 내팽겨치고는 단도를 빼앗아 교회 담벼락에 던져버렸다.

일어나 나랑 갑시다!” 그는 먼저 교회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겨 놓았다. 과부는 일어났다. 그러고는 앞으로 달려 나가려고 전신의 힘을 모았다. 그러나 달려나갈 힘이 없었다. 늙은 마브란도니 영감이 민첩한 매처럼 과부를 덮쳐 땅바닥에 쓰러뜨리고는 검은 머리카락이 치렁거리는 목을 끌어안고는 단도로 단숨에 목줄을 따버렸다.

이 죄악의 책임을 내가 진다!” 마브란도니는 이렇게 소리치며 잘라 낸 과부의 목을 교회 문턱에다 팽개쳤다. 그러고는 성호를 그었다. 조르바는 그제야 고개를 돌리고 그 끔찍한 광경을 묵묵히 바라보았다.[26]

 

밝은 대낮에 그것도 부활절축제기간에 교회 앞에서 살인이 일어난다. 사람들이 춤을 추느라 교회가 비어있을 동안에 그리스도께 꽃을 바치고 싶어서 교회를 찾아왔던 그녀를, 사람들은 법정에서의 한마디 변호도 듣지 않고 무자비하게 살해한다. 과부를 죽인, 마브란도니 이외에도, 대다수의 마을사람들이 방관자로서 그녀의 죽음에 동조했고, 오직 조르바만이 왼쪽 귀가 물어 뜯기는 몸싸움을 감당하며 최대한 싸웠지만, 역부족이었다. 본인은 이 무법의 장소에서 마르코 복음 15 6-15절에 나오는 군중들의 외침을 떠올렸다.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3-3. 예수

성경읽기 (15, 6-15) (무죄한 이에게 죽음을 선포하다)

예수도 얼마 전까지 당신을 환호했고, 심지어 당신이 기적을 일으켜 그를 치유해준 적이 있는 사람이 섞여 있을 지도 모르는 군중들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

예수가 그의 대적들이 그의 인품과 자질을 시기했기 때문에 넘겨졌다는 것을 안 빌라도는, 요컨대 국민투표를 구하며 처신을 조심스럽게 한다(10)참조[27]. 빌라도의 모습에서 커다란 악은 도덕적 무관심에서 온다는 것을 본다. 군중들을 자기들의 목적에 교묘하게 이용하는 교활한 대사제들 가운데에 악이 역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 조종을 당하여, 피를 요구하는 변덕스러운 군중들 가운데서도 악을 보게 된다. 그러나 정의에 관심 없는 우유부단한 총독은 이 악이 폭발하게 허용한다[28].

조르바가 부당한 악에 대항하여 자신의 힘을 다해 싸우는 것까지 할 수 있었다면, 예수는 부당한 악을 끌어안고 생명까지 내어놓는 새로운 사랑을 보여주신다. 예수는 바로 하느님이시기에, 인간의 지헤로는 알 수 없고 할 수 없었던 일을 완성하신다.

예수의 방법은 불의, , 상처라는 독과 같은 악을 빨아들이고, 사랑과 용서라는 훨씬 더 강력한 힘을 폭발시킨다. 하느님의 법은 악에 구속적으로(redemptive) 반응하며 그것을 단절시킨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음이라는 아픔을 취하시고 모든 독을 빨아들이셨다. 밴스톤(Vanstone)은 예수의 고난에서 흥미로운 특징-수동성-을 지적한다. 그것은 그의 사역에서 극적인 방향 전환이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철저히 신뢰하면서, 고난을 당하는 방식을 예수로부터 배울 수 있다[29].

 

4. 나아가는 글

우리는 이제까지의 고찰을 통해,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이 죄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는 것이 얼마나 큰 악을 가져오는지 살펴보았다. 광기에 찬 100여년 전 크레타 섬의 살인자들은, 2000년 전에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큰소리로 외치던 그 군중과 다를 바 없다. 나와 우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는 의인이고 너는 죄인이다. 성과 속의 경계는 지엄하고 나의 가치관이 너의 가치관위에 있다. 너의 죄가, 내 죄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만군의 주님이신 하느님은 친히 역사 속으로 하강하고 육화하신다. 우리와 함께 울고 웃다가, 우리 죄를 대신해서 돌아가신다[30]. 하느님은 우리 인간의 이 완악한 죄악을 당신의 품 안에 다 끌어안으신다. 구세주로서 십자가에 못박혀 피를 흘리셨다. 자신의 처형을 진행했던 이방인 백인대장의 고백을 통해, 참으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알리신다(15, 39). 그 아들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 십자가의 죽음으로서 알려주신다. 우리는 순간순간 예수님과 같은 선인(善人)을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성찰해가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 문헌

 

1.      알렉스 헤일리, 안정효 옮김, 『뿌리』, (파주: 열린책들, 2006)).

2.      이혜자, 『내러티브와 백인대장의 고백(마르 15, 37-39), 신학연구소 월례 콜로키움 4/23, 1p.

3.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파주: 열린책들, 2014).

4.      이윤기(1947~2010) 경북 군위 출생, 성결교신학대 기독교학과 수료,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당선, 『장미의 이름』 (파주: 열린책들)등 다수작품 번역.

5.      브라운 레이몬드 E., 『신약개론』, CLC, 2003, 211p.

6.      D.Rhoads, 『이야기 마가』, (서울: 한들출판사, 2003), 174p 참조.

7.      포엘, M.A., 『서사비평이란 무엇인가?,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3), 9-10p.

8.      풍성한 서사비평을 위하여 D.Rhoads, 『이야기 마가』, (서울: 한들출판사, 2003) 102-106p 참조.

9.      오든, 토마스.C., 『교부들의 성경주해-마르코 복음서』, (왜관: 분도 출판사,2011), 297p.

10.    학대 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이사 53,7).

11.    바이셰델, W., 이기상∙이말숙 옮김, 『철학의 뒤안길』, (서울: 서광사, 1990), 341-352p 참조.

12.    갤런드, D.E., 『마가복음』, NIV 적용주석, (서울: 솔로몬, 2011), 739p 참조.

13.    에반스, C.A., 김철옮김, 『마가복음』, (서울, 솔로몬, 2002), 792p참조.

시몬느 베이유, 『중력과 은총』, (서울, 동서문



[1]우리가 어디서 왔고, 누구였으며, 무엇이었는지, 지금의 우리를 잊지 않기 위해서 이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이 말은 출처는 『뿌리』라는 책이다. 이 책은 저자인 알렉스 헤일리가, 자신의 조상들로부터 전해 들은 7대손 할아버지 킨타쿤테의 이야기를 따라 가며 진실을 밝혀낸다. 17살에 평화롭던 아프리카에서 노예사냥꾼에 의해 갑자기 미국 버지니아로 끌려오게 된 킨타쿤테는 어릴 때부터 자식들에게 나의 고향은 해뜨는 동쪽이었다는 말을 남겼다. 대를 이어 전해진 이 말은 결국 알렉스 헤일리가 성인이 된 후, 동쪽으로 동쪽으로 가게 했고, 정말로 아프리카의 어느 해변에 닿았고, 자신들의 역사를 외어서 이어가는 부족을 만났다. 그 이야기 속에서 어느날, 숲속에 사냥을 갔다가 갑자기 사라진 할아버지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의 뿌리를 찾았다는 내용이다(알렉스 헤일리, 안정효 옮김, 『뿌리』, (파주: 열린책들, 2006)).

[2] 이혜자, 『내러티브와 백인대장의 고백(마르 15, 37-39), 신학연구소 월례 콜로키움 4/23, 1p.

[3]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파주: 열린책들, 2014).

[4] 이윤기(1947~2010) 경북 군위 출생, 성결교신학대 기독교학과 수료,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당선, 『장미의 이름』(파주:열린책들)등 다수작품 번역.

[5] 레이몬드 E. 브라운, 『신약개론』, CLC, 2003, 211p.

[6] D.Rhoads, 『이야기 마가』, (서울: 한들출판사, 2003), 174p 참조.

[7] M.A. 포엘, 『서사비평이란 무엇인가?,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3), 9-10p.

[8] D.Rhoads, 『이야기 마가』, (서울: 한들출판사, 2003).

[9] M.A. 포엘, 『서사비평이란 무엇인가?,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3), 11p.

[10] 이혜자, 『내러티브와 백인대장의 고백(마르 15, 37-39), 신학연구소 월례 콜로키움 4/23, 3-5p.

[11] 풍성한 서사비평을 위하여 D.Rhoads, 『이야기 마가』, (서울: 한들출판사, 2003) 102-106p 참조.

[12] 토마스.C.오든, 『교부들의 성경주해-마르코 복음서』, (왜관: 분도 출판사,2011), 297p.

[13]학대 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이사 53,7).

[14] D.Rhoads , 『이야기 마가』, (서울: 한들출판사, 2003), 163-166p.

[15] D.Rhoads , 『이야기 마가』, (서울: 한들출판사, 2003), 174-175p.

[16] D.Rhoads , 『이야기 마가』, (서울: 한들출판사, 2003), 191p.

[17] W.바이셰델, 이기상.이말숙 옮김, 『철학의 뒤안길』,(서울: 서광사, 1990), 341-352p 참조.

[18] D.E. 갤런드, 『마가복음』, NIV 적용주석, (서울: 솔로몬, 2011), 739p 참조.

[19] 이혜자, 『내러티브와 백인대장의 고백(마르 15, 37-39), 신학연구소 월례 콜로키움 4/23, 15p.

[20] D.Rhoads, 『이야기 마가』, (서울: 한들출판사, 2003), 197p.

[21] C.A.에반스, 김철옮김, 『마가복음』, (서울, 솔로몬, 2002), 792p참조.

[22]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파주: 열린책들, 2014), 227-241, 349-358p 참조.

[23]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파주: 열린책들, 2014), 445-480p 참조

[24] D.E. 갤런드, 『마가복음』, NIV 적용주석, (서울: 솔로몬, 2011), 36p 참조.

[25] 레이몬드 E. 브라운, 『신약개론』, CLC, 2003, 254p참조.

[26]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파주: 열린책들, 2014), 351-355p 참조

[27] C.A. 에반스, 김철 옮김, 『마가복음』, (서울, 솔로몬, 2002), 739p참조.

[28] D.E. 갤런드, 『마가복음』, NIV 적용주석, (서울: 솔로몬, 2011), 724p.

[29] D.E. 갤런드, 『마가복음』, NIV 적용주석, (서울: 솔로몬, 2011), 724p.

[30] 시몬느 베이유, 『중력과 은총』, (서울, 동서문화사)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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