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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9장에 드러나는 인간의 사명과 실존적 한계, 하느님의 영원한 축복

책_추천도서/신학이야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7. 14. 10:59

본문

서론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1).


오경의 첫 시작에서, 이스라엘인들은 그들의 하느님이 이 세상의 창조주이심을 끊임없이 고백한다. 이러한 창조주 하느님은 노예살이 하던 이집트 땅에서 자신들을 구해내고, 검푸른 바다를 말려 그들을 탈출시킨 분이셨다(탈출 14장 참조).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던 이스라엘민족은,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지도층이 바빌론으로 유배 가는 최대의 불운을 맞게 된다.타국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던 이들은, 강대국인 바빌론의 문화와 고대 근동의 신화[1]를 받아들여 자신들의 신관을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노력이 창세기 1장에서부터 11장까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스라엘의 신학자들은 이웃 종교의 다양한 표상들을 접했고 깊이 성찰했으며, 고유한 야훼 신앙으로 훌륭하게 소화하는데 결국 성공했다[2].


이제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그들의 고향으로 이끌어가실 야훼 하느님은, 이스라엘 민족만의 하느님이 아니라, 이 세상의 창조주이자 구원자이신 하느님이어야 한다. 창세기 3-4장에서는 결정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인간의 욕망과 죄악을 보여준다. 이어진 5-6장은 세상에 더욱 많아지는 악 때문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는 하느님과 노아만은 하느님의 눈에 들었음을 알려준다. 7-9장에서는, 홍수로 세상을 정화하시지만, 인간의 부족함을 끌어안으시고 영원히 축복하시는 하느님의 계약이 선포된다(창세 8,21-22: 9장 참조).

 


본론


창조된 인간의 고유성과 그 사명


창세기 1,1-2,4a는 사제계 문헌[3]으로 보고, 2,4a-4,26까지는 야훼계 문헌[4]으로 본다. 바빌론 땅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인들은 나라도, 성전도, 그들 고유의 제도도 없는 절망의 상황이었다. 그들의 지도자들인 제관들은 백성들에게 조상들의 율법과 규정, 전례를 보존시켜주고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하느님의 창조질서 안에서 참다운 창조신앙을 갖는 것으로 제시했다, 즉 하느님은 모든 우주만물의 창조주이며, 우리는 그분께만 의존해야 한다는 권고이다[5]. 이것은 야훼계 문헌에서도 기본적으로 나타나는 주제이다.


하느님은 빛, 창공, 물 과 불 · 식물, 그리고 해 와 달, 수중생물 · 날짐승 등을 5일동안 차례대로 만드신 후 6일째 되는 날에, 길짐승과 사람을 창조하셨다(창세 1장 참조). 이는 인간이 살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가는 신()의 축복으로 볼 수 있고, 톨레도트(toledot, 가계 혹은 족보)의 개념이 강조되어, ‘엘로힘이 인간역사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암시한다[6]. 그리고 하느님은 창세기 1, 26절에서,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만든 사람에게 땅을 가득 채우고 온갖 생물을 다스리게 할 희망찬 계획을 세우신다. 이어진 27절에서 당신의 모습으로 즉 신의 형상(imago Dei)’인 사람을 창조하시고 28-31절에서는, 온갖 생물을 다스릴 고유한 사명을 주신다


이는 <에뉴마 엘리쉬>의 여섯째 토판 33-35절에 나오는 (죄지은 )의 피로 사람을 만들었다. (사람들에게) 신들의 노역을 감당시켰고, 신들을 쉬게 했다[7]는 고대근동신화의 자기정체성 인식에서, 이스라엘 인들이 탈신화화한 증거이며 인간창조의 존엄성이 선포된다. ‘신의 형상(imago Dei)’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희랍적 라틴적 사유에 기초한 교의적 사유의 관점에서 벗어나, 성경의 문맥순서에서 살펴보면, 인간은 동물들을 지배할 수 있거나, 다스릴 수 있을 때에, 비로서 신의 형상(imago Dei)이 되는 것이다[8]. 이러한 의미에서, 창세 1,1절에 쓰였던 창조하다 bara’의 뜻을 주목해 볼 수 있다[9].


이 단어는 일방적인 명령이나 통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는 단어임을 알 수 있다. 하느님은 이렇게 우리 인간에게 당신의 뜻대로 창조된 세계가 완성해갈 수 있도록 응답하는 사명을 주셨다. 이러한 과정에서 남자와 여자로 창조된 사람은 또한 서로 협력해야 한다(창세 2, 18 참조).협력자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에제르(ezer)로 신()께 호소하는 단어인데, 자신보다 강한 능력의 소유자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이로써 남자와 여자는 서로간에 우월이나 열등한 존재임이 아니라, 신이 인간을 위해 행동하는 것처럼, 여자가 남자에게, 남자가 여자에게 처신할 것을 암시한다[10].

 


인간의 한계가 드러나는 유혹됨과 죄악


야훼계 문헌인 창세 2,4b-4,26절까지는 두번째 창조이야기, 사람과 여자의 불순종, 에덴동산에서의 추방이 나온다. 끝으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고의 죄악인 살인이 가장 가까운 사이인 형제간에 나타난다. 인간의 실존적 한계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다. 죄악을 책임지지 않으려는 인간의 회피성도 부각된다.


3장에서는 첫번째로 뱀이 나타난다. 왜 하필 뱀이 유혹자의 역할을 하여 끊임없는 저주를 받게 되었을까?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와 비교하여 보면 에덴 동산의 뱀은 뱀신 닌기쉬지진다를 가르킨다고 볼 수 있다. 닌기쉬진다는 치유의 신, 저승의 좋은 신으로, 집안의 수호신 역할을 했으며, 선악의 지식을 알도록 유도했다[11]. 여기서 이스라엘 민족은 또 한번 뱀에게 벌을 내리는 하느님을 통해서 이세상의 주권자는 야훼 한 분 뿐이심을 보여준다.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은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열매를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창세 3,3)’는 금지명령이다.


여자는 야훼 엘로힘의 말을 신뢰하기 보다는, 뱀의 해석을 쫓는다. 야훼 엘로힘은 인간에게 죽음과 앎이 함께 간다고 경고했는데, 여자는 이제 앎(뱀의 해석)이 죽음(야훼 엘로힘의 선언)을 압도하고 넘어설 것이라는 유혹에 넘어간다. 그러나 이 앎은 신의 금지 명령에 반()하여 생긴 불행한 이다. 오히려 이 나무가 가르키는 상징은 인간 실존을 전체적으로 보여주거나 제한하는 요소로 읽혀지고 이해해는 것이 올바른 해석일 것이다. 즉 인간이 경험하는 현실의 불행을 암시하는 이야기의 본래 의도는 그 원인을 인간 안에서 찾으려고 한다는 것이다[12]. 즉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자유는 방종과 독선으로서 공동체는 물론이고, 생명을 이루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이룰 수 없는 죽음의 상태이다[13]

 

이제 창세 4장의 형제살인 이야기는 좀더 사회적 인간 문제로 기울어진다. , 타자와 맺고 있는 공동체적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지 그 태도를 이야기한다. 한 핏줄인 형제도 경쟁, 적개심, 증오, 질투라는 갈등을 안고 있는데,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공동체들이 만난다면 더욱 폭발할 수 있는 갈등이 잠재하고 있다는 인간 사회의 실존적 상황을 보여준다. 사실 카인은 장자로서 모든 것을 누리면서도, 모든 이의 시선을 원하여, 약자를 먼저 돌보는 사랑의 신인 야훼의 모습을 참지 못한다.[14].

 


하느님의 진노와 영원한 축복 (추방과 홍수와 무지개…)


하느님은 흙의 먼지로 사람을 만드셨고 그 이름은 아담(adam)이었다(창세 2,7: 4,25참조). 아담은 질서잡힌 땅 아다마(adamah)을 의미했으나, 이제 카인은 아우의 피가 울부짖는 땅에서 추방되어 혼돈의 땅 에레츠(‘eretz)로 되돌아가게 되었다[15]. 이어지는 5장은 사제계 문헌으로 아담의 모습을 담은 셋에서부터 노아에 이르기까지 10대의 족보로, 잘못된 과거를 생각하기보다 밝은 미래의 희망을 더 이야기하고 싶어한다[16]


6,5-8,22은 홍수설화로서 사제계문헌과 야훼계 문헌이 섞여서 구성되었지만, 공통적으로 홍수의 원인을 인간의 죄악상에 두고 있다. 다양한 인간의 죄가 점차로 확산 · 심화되어 마침내 인간 존재 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찼다고 말한다[17] 그러나 구원은 파멸(破滅)과 더불어 시작된다. 창조가 물로 상징되는 카오스에서 질서를 세워나간 것이며 7일째 되는 날에 엘로힘의 휴식으로 정점에 달했다(창세 1). 


홍수()에 의한 파멸인, 노아를 제외한 전 인류에게 멸망이 되는 새로운 창조도, 방주의 문이 닫힌 후, 7일이 지난 다음에 시작하려 하신다(창세 7,4 참조)[18]. 태양력으로 한 해를 꽉 채우고 홍수의 끝이 왔으며[19] 이어지는 9장의 사제계 문헌에서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정당한 지배와 생명을 의미하는 피를 흘리는 자에 대한 응징을 강조한다[20]. 하느님께서는 미래의 모든 세대를 위하여 세우는 계약의 표징으로 무지개를 정하신다(창세 9,12-16). 무지개는 창세 1,6-8의 물과 물을 갈라 놓는 궁창을 상기시키며, 이러한 기능을 상실한 홍수로 이제는 모든 생명을 파멸하지 않겠다는 하느님 계약의 상징이다[21].

 

결론

하느님은 홍수 후에 노아가 올리는 번제물의 향을 받으시고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땅이 있는 한 씨뿌리기와 거두기,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않으리라’(창세 8,22참조)고 생각했다. 이는 당신이 만드신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를 받아들이시고 끌어 안으시는 부모님와 같은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까지의 고찰을 통해 볼 때,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에서의 탈출과 유배의 고통을 겪으면서 그들만의 고유한 신관을 정립했다. 이는 신명기 4 43절의 말씀에서 잘 드러나고 있으며, 현재의 이스라엘 민족인 우리 신앙인들도 늘 되새기며 노력해야 하는 새로운 소명이다.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그래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잘되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영원토록 주시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참고서적

 

- 안성림 조철수 공저, 『사람이 없었다 도 없었다』, (서울: 서운관, 1995)

- 조철수, 『수메르 신화』, (서울: 서해문집, 2003)

-  주원준, 『구약성경과 신들』, (한님성서 연구원,2012)

- 박종구, 『사람아, 너 어디 있느냐?, (서울:서강대학교 출판부,2007)

-  성서와 함께 편집부, 『보시니 참 좋았다』, (서울: 성서와 함께, 1994)

- 에리히 쳉어, 『구약성서의 이해』, (분도출판사, 2012)

- 장 루이 스카, 『모세오경』, (서울: 성바오로, 2009)

- 베르니. H. 슈미트, 구약성서 입문, (대한기독교서회, 2012)

- 우광호, 유대인 이야기, (서울: 여백, 2012)



[1] 바빌로니아의 창조 서사시 <에뉴마 엘리쉬>, 홍수이야기인 <지우쑤드라 이야기>, 인간창조 이야기인 <아트라하시스 이야기>, 영웅의 서사시인 <길가메쉬 이야기>에 나오는 홍수 이야기 등을 들 수 있다(안성림 조철수 공저, 사람이 없었다 도 없었다, (서울: 서운관, 1995), 13p 참조/ 조철수, 『수메르 신화』, (서울: 서해문집, 2003), 119-136p 참조).

[2] 주원준, 『구약성경과 신들』, (한님성서 연구원,2012), 5p.

[3] 사제계 문헌은 제의와 성소를 중요시하는 제의공동체의 작품이다. 유배에서 돌아온 초기인 AD 520년경 바빌론에서 형성되었다는 견해와 함께, 더 후대에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L.S.슈미트는 가정하기도 한다. 사제계 신학은 세상의 기원/시작을 세상의 본원적 목표로 서술하며 그 도구로서 이스라엘을 선택했고, 창세 1,1-2,4a은 창세기 6-9장에서 뚜렸이 드러나는 현실에 맞선 하느님의 유토피아로 그려진다(에리히 쳉어, 구약성서의 이해, (분도출판사, 2012), 268-299p 참조).

[4] 창세기 2,4a-4,26를 야훼계 문헌으로 보는 데에는 현재 여러 의견이 공존하고 있다. 레빈은 판 세터스와 로즈의 입장에 근거해서, 야훼계 저자를 바빌론 유배중에, 단편으로 되어있는 고대 원천들을 수집하여 재해석한 편집자로 보기도 하고, 쨍어는 보충자료가설로 원시 야훼계 문헌이 존재했고, 여러시기에 걸쳐 보충되었다고 상상한다. 그 외에도 통일왕정초기에 야훼계문헌이 존재했다고 가정하는 W.H 슈미트의 학설도 있다(장 루이 스카, 『모세오경』, (서울: 성바오로, 2009), 245-265p 참조).

[5] 성서와 함께 편집부, 보시니 참 좋았다, (서울: 성서와 함께, 1994), 42-43p.

[6] 박종구, 사람아, 너 어디 있느냐?, (서울:서강대학교 출판부,2007), 66-69p.

[7] 안성림 조철수 공저, 『사람이 없었다 도 없었다』, (서울: 서운관, 1995), 67p.

[8] 박종구, 『사람아, 너 어디 있느냐?, (서울:서강대학교 출판부,2007), 99-110p.

[9] 앞의 책 90p, 주석 25.

[10] 앞의 책 186-187p.

[11] 조철수, 『수메르 신화』, (서울: 서해문집, 2003), 215p, 각주 25 참조.

[12] 박종구, 『사람아, 너 어디 있느냐?, (서울:서강대학교 출판부,2007), 235-243p.

[13] 성서와 함께 편집부, 『보시니 참 좋았다』, (서울: 성서와 함께, 1994), 85p.

[14] 박종구, 『사람아, 너 어디 있느냐?, (서울:서강대학교 출판부,2007), 301-3324p.

[15] 앞의 책, 348p.

[16] 박종구, 『사람아, 너 어디 있느냐?, (서울:서강대학교 출판부,2007), 397p.

[17] 성서와 함께 편집부, 『보시니 참 좋았다』, (서울: 성서와 함께, 1994), 127-129p.

[18] 박종구, 『사람아, 너 어디 있느냐?, (서울:서강대학교 출판부,2007), 431p.

[19] 위의 책, 437p.

[20] 위의 책, 456p.

[21] 위의 책, 4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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