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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대정 정난주 마리아묘 "현대적인 순교의 모범"

성지_햇살속으로/호남제주권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0. 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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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리 성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정읍을 찾아간다. 처음에는 번지수만 갖고 찾기에 버거웠다. 몇 번 물어보고 공터에 한번 들어갔다 나온 후 찾아갈 수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양 옆으로 이국적인 야자수 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다. 그리고 아치형 돌문이 제주만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단아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아담한 공원 같은 묘소를 만나게 되어 기뻤다. 멀미가 났는지 막내가 입구벤치에 드러눕는 데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서 편안하게 해준다. 잠시 앉아 있으니 세상사 번뇌가 다 씻겨지는 듯 참 편안하다. 좀 있으니 아이가 괜찮다고 해서 같이 성지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먼저 들어간 남편이 묘소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고 있다. 진실함이 느껴졌다. 후에 물어보니 정난주 마리아의 일생을 묵상하였는데 참으로 마음이 아팠고 존경의 마음을 느꼈다고 한다.

명문대가에서 태어나 장안의 신동과 결혼하였지만 남편은 능지처참을 당하고 시어머니와 자신은 노비가 되어 이 먼 곳까지 왔다. 두 살난 아들을 추자도에 내려놓고 떠나온 어미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그 고통을 묵상하며 자신도 세상의 어려움을 이겨나갈 용기를 얻은 것 같다고 하였다. 나도 어머니의 입장에서 점점 커가는 아이들과의 어려움을 잘 인내하고 극복해 나가야 되겠다고 다짐했다. 성지에는 야외제대와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칠 수 있는 묵상처 들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정난주 마리아는 1773년 마재에서 정약현(정약전•약종•약용의 큰형)의 맏딸로 태어났다. 또한 어머니는 한국천주교회의 창립선조 5위에 속하시는 이벽의 누이였다. 또한 황사영의 어머니 또한 최초의 세례자인 이승훈과 일가인 진사 이동운의 딸이었다.

이로써 그의 가족은 천주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토대를 가지고 있었다. 황사영은 열여섯 살이었던 1790년 9월 12일 진사시에 합격하여 친히 정조대왕을 만나 등용을 약속 받았다. 하지만 결혼 후 처고모부인 이승훈으로부터 교리를 접하면서 현세의 안락 대신 영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그 후로 과거를 포기한 채 얼굴이 누렇게 뜰 정도로 교리를 열심히 연구하였다. 그래서 천주교를 세상을 구할 명약으로 생각하였으며, 그의 집에는 교리를 배우고자 전국에서 몰려온 식객들이 항상 머무르고 있었다고 한다. 이 모든 뒷바라지는 정난주 마리아의 몫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황사영은 결국 주문모 신부님과 많은 평신도 지도자들이 처형된 1801년 신유박해를 겪으며 북경교회의 구베아 주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작성하게 된다. 이는 가로 62Cm, 세로39Cm의 흰 비단에 쓴 것으로 외세에 의존하여 종교의 자유를 획득하고자 한 내용 때문에 그 해 12월 10일 능지처참의 극형에 처해진다. 

배 아프다고 누워있는 막내


유복자로 자신을 기르신 어머니는 거제부 노비로 아버지 대신 정성껏 자신을 길러주신 숙부는 함경도 경흥으로 유배되고 부인과 두 살 난 아들은 제주도 노비로 보내진다. 제주도 유배길에서 그녀는 평생을 노비로 살아가야 할 아들이 안쓰러워 잠시 중간 기착지였던 추자도 갯바위에 아이 황경한을 남겨 놓았고 매수한 포졸들에 의해 병에 걸려 죽어서 수장하였다고 말하게 한다.

아들 경한은 오씨 성을 가진 어부에게 발견되어 추자도 예초리에서 성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정현의 노비로 간 정난주 마리아는 타고난 인품과 덕행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고, 대정현의 유지 김석구의 집에서 큰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정성껏 길러준 김석구의 아들 김상집은 추자도에 있는 정 마리아의 아들 경한과 편지왕래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용수리성지 기념관에는 김상집이 추자도의 황경한에게 보냈던 정난주 마리아의 부고가 전시되고 있다. 


정난주 부고편지 번역문(의역)
추자도 예초리에 귀양살이 하는 황 서방 본댁에 삼가 드림
기해년(1839년) 정원 23일 대정 서정리 주인 김상집


두 번째 쓴 서장(書: 편지)
종전에 뵈온 바 없사오나 소식 종종 들어 아옵더니
근래에 소식 듣지 못하오니 매우 딱하옵니다.
추위가 심한 요즘 기체후(건강) 어떠하온지 알고자 하옵니다.
어른(당신)의 이곳 대부인(大夫人: 모친) 정씨가 불행하여 지난해 2월 초하루 묘시(5~7시 사이)에 별세하신고로 장례를 잘 지냈사옵고, 부고 편지를 진작에 보냈사옵니다. 그러나 지금껏 회답이 없어서 의아해 하던 차에 추자 사람 이 서방 편에 듣자와 안부를 알았사옵니다. 그러나 부고가 전해지지 않은 듯 하오니 세상사 가이없사옵니다.
이곳 주인 도리에 차마 박절하옵기로 제사와 명절 차례를 다 지내오니 그리 아옵소서. 마침 인편이 있기에 다시 자상한 편지를 하오니 그리 아시기 바라오며, 회답을 인편에 즉시 전하옵소서. 말씀은 한이 없사오나. 총총히 줄여서 올립니다.

제주도에서의 그의 삶은 굳건한 신앙과 정신력이 없으면 견디기 어려운 순간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이 모든 운명에 순응하며 주님이 주신 삶을 잘 참고 견뎌낸 그의 신앙에서 현대적인 순교의 모범을 본다.

관련 글: 황사영 알렉시오 묘

관련 글: <흑산>과 정약전, 황사영 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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