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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 산속 외딴집에서 가진 소박한 가족모임

햇살가족 일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7. 22.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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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을 이용해 강원도 영월에 다녀왔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이들을 깨워 급하게 나왔다. 고덕동 형집에 우리 차를 세워두고 형 차에 합승하여 목적지인 영월 상동까지 달렸다. 인연이 닿아 지난해 겨울, 단종릉을 비롯해 근처 하이원리조트까지 다녀왔는데 그때를 계기로 영월이 그리 멀지 않은 곳이 되었다.


영월의 상동은 영월 읍내에서 40분 넘게 달려야 할 만큼 먼 곳으로, 태백과 오히려 더 가깝다. 영월 읍내를 중심으로 하동, 중동, 상동읍으로 나뉘는데 하동면은 김삿갓면으로 이름을 바꿨고, 중동면과 상동읍만 원래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산속 외딴 집'이라고 소개를 받았는데 말 그대로다. 집 앞으로, 옆으로 작은 계곡물이 흐르고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다. 밤이 되자 그야말로 칠흑같은 어두움이 찾아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시절, 흐린날이면 내 발마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어둠. 구름 사이로 잠깐씩 초승달이 나오면 주변 산세가 보이다가도 구름 속으로 사라지면 오로지 어둠만 있는, 오랜만에 옛날 속으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상동읍 구래리. 위성지도로 보니 하이원리조트를 등지고 있다. 발을 담그면 1분을 버티기 힘들 만큼 시원한 계곡물은 헤엄치고 놀기는 아쉽지만, 물장난하면서 더위를 식힐 정도로는 충분하다. 아이들은 돌로 작은 물막이 공사를 하여 그곳에서 물놀이하며 즐겁게 놀았다.


오전 11시 무렵에 도착했는데도 하루가 꽤 길었다. 미리 도착한 큰형 식구들이 준비해 놓은 점심을 먹고, 저녁은 늦게 도착한 사람들에 맞춰 길게 먹었다. 모란시장에서 한마리 준비해온 재료를 가마솥에 넣고 장작불로 푹 고아 만든 여름 보양식은 여름 모임에서 빠찌면 섭섭하다.



휴대폰으로 찍은 그곳 풍경


저녁 식사 후, 아궁이에서 타고 있던 장작불로 모닥불을 피웠다. 옛날 이야기도 하고 어두컴컴한 그곳 분위기를 살려 도깨비 이야기도 했다. '납량특집'이 필요없는 기온이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한 사람이 입심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마침 건너편에 빨간 불 한 쌍이 반짝이는 것도 보였다. ‘초등학생들에게 저건 분명히 도깨불인 거 같다’고 ‘게임에서 진 사람 3명을 뽑아 직접 그곳에 가서 어떤 모습인지 확인해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타오르는 모닥불만 쳐다보고 있어도 마음이 편해진다


아이들은 거짓말이라고 하면서도 어느 정도 긴장감을 갖고 게임에 응했다. 초등학교 3학년 막내가 뽑히고 말았다. 멋 없는 아이들의 둘째 큰아빠의 “저게 무슨 도깨비불이냐?”는 분위기 깨는 한마디에 게임 열기는 금방 식어버렸다.


오뉴월 복더위 속에 보일러를 켠 산속 통나무 진흙집에 누웠더니 계곡물 소리가 비내리는 소리처럼 들려온다. 으레 들려오게 마련인 코고는 소리마저도 잠 재울 정도로 계곡 물소리가 꿈결에도 계속 들려왔다.


다음 날 아침, 꼭 성당 미사를 가자는 둘째 형수의 제안에 세 팀으로 구성됐다. 소원바위 등산팀, 근처 고랭지 배추밭 트래킹팀, 상동공소 주일미사팀. 나는 얼떨결에 아버지를 모시고 상동공소 주일 미사팀에 합류하게 됐다. 내리막길을 10여 분을 달린 다음 태백쪽으로 다시 10여 분 달리자 상동중고등학교가 나오고 그 길에서 좌회전해 조금 더 들어가자 상동공소가 나왔다. 예전 석탄 산업이 호황이었을 때만 해도 ‘작은 서울’이라 할 만큼 활기를 띠던 곳이어서 아담한 공소 전용 건물이 아닌, 꽤 규모를 갖춘 성당건물이었다. 아마도 비행기 격납고를 이용해 만든 성당건물이지 싶었다.


마침 공소 예절을 마친 어르신 몇 분과 아주머니 몇 분이 내려오고 계셨다. '둘째 넷째주는 공소예절로 치러지기에 오늘은 공소예절을 바치는 것으로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것이 된다’면서 공소예절 안내 책을 주셨다. 우리 막내와 아버지, 둘째 형님 내외 다섯이서 바쳤던 공소예절은 몇 년 전 한겨울 풍수원성당에서 신부님과 수녀님, 우리 가족만이 바쳤던 미사처럼 잊을 수 없는 시간으로 남을 거 같다.


공소 예절을 마치고 성당 맞은편 산을 보니 깎아지른듯 가파르다. 거센 계곡물 소리가 예사로운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많은 사람이 떠나버리 한적한 곳이 되어버린 그곳이 옛 영화를 간직한 채 병풍처럼 두른 자연에 감싸여 잠들어 있는 분위기랄까.


서울 생활에 깊이 물든 둘째 형이 빨리 가자고 제촉하는 바람에 우리도 왠지 모를 바쁜 마음이 들어 종종걸음을 쳤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여름 꽃과 쪽빛 계곡물이 좋았다. ‘옥수’라는 말이 이 계곡물을 표현하는 말이었으면 좋겠다 싶다. 차에 탄 형수께서 계속 찬탄한다. ‘아름답다, 아름답다…’의 연속이었는데 주변에서도 따라서 정말 멋지다는 말이 이어졌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것이 바로 작은 감사이자 기도가 아니었나 싶다.


다시 산속마을로 돌아와 운전자가 길 끝까지 올라가보자고 했다. 한참을 올라가지 산비탈을 일궈 조성한 고랭지 배추밭이 펼쳐졌다. 어렇게 비탈진 곳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었다. 함께 간 아버지께서 당신도 산비탈 밭을 알지만,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면서 댄단하다는 말을 계속 하신다.


내려오는 길에 개망초 꽃이 하얗게 핀 곳에서 멋지게 사진도 찍었다.

오는 길에 솔표조선무약사의 상표에 나오는 소나무도 구경했다.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그야말로 멋있고 오랜 세월을 머금은 굵은 줄기의 껍질에서 풍겨져 나오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말 그대로 말이 필요없을 만큼 멋진 나무였다.

휴대폰으로 찍은 솔표 우황청심원 상표의 주인공 소나무


어제 밤에 맛보았던 맛있는 감자 두 상자를 나눠갖고 다시 오다가 감곡 감곡성당에 들렀다. 한여름 더위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서있는 모습. 대여섯번 들른 곳이지만 올 때마다 좋다.

감곡성당


주말 각오했던 고속도로 정체 없이 고덕동 형집에 들러 그 사이에 맛보지 못했던 커피와 치킨으로 저녁을 먹고 과천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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