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입이 호강할 수 있는 곳 '포천'
산정호수 – 산사원 - 이동갈비 – 광릉국립수목원 여행
포천은 서울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철원과 가까운 영북면 등에서 속초나 강릉에 가려면 서울에서 출발한 것과 비슷하게 걸리거나 오히려 더 걸린다. 한국전쟁 통에는 시의 일부 지역이 북측에 속했다. 국도를 달리다 보면 만나는 ‘추억의 38선 휴게소’의 근처가 38선이라니 그 북쪽이 그러지 않을까 한다. 예전에는 양주를 거쳐 북녘으로 가는 길목이 바로 이곳 포천이었다. 이번 우리 가족 여행지가 바로 그 포천이다.
과천에서 두 시간 넘게 걸린 산정호수. 산사원을 거쳐 국립수목원으로 내려왔다
업무차 몇 번씩 그곳을 지나다니던 어느 겨울, 산정호수가 유명하다기에 동료들 몇 명과 거기에 들러 꽁꽁 언 호수를 걸어보기도 했다. 그곳을 10여 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 산정호수라는 이름이 쉽게 머리에 들어오고 뭔가 다른 곳일 거 같다는 느낌을 줬다. 식구들은 처음으로 가는 곳이어서 이런저런 기대를 했다. 아이들은 안락한 숙소에 더 관심을 가졌다.
한화콘도쪽에서 바라본 산정호수 다리와 둘레 산
山井호수 그 뜻대로 ‘산에 둘러싸인 호수’ 정도로 생각해도 되지 싶다. 해가 넘어가고 어둠이 밀려올 무렵, 한화콘도 쪽에서 올라간 산정호수. 호숫물에 비친 높은 어스름한 산 그림자가 그림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어둠이 깊어지자 산 그림자도 사라지고 드문드문 가로등 빛만이 반짝인다.
높은 산과 함께 바라본 호수가 아름다웠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 다음날 이른 아침에 눈을 떴다. 밖을 보니 자욱한 안개에 둘러싸여 있다. 저 멀리 웅장한 산이 구름 속에 아련한 자태를 드러내 꽤 운치있었다. 숙소 퇴실 절차를 밟고 식구들과 산정호수를 한 바퀴 걷기로 했다. 김일성 별장터에서 호수를 바라보면 왼쪽 호숫가는 가파른 산과 접하고 있다. 그곳은 길을 내기 곤란해 수상 갑판을 설치해 산책로를 만들어 놓았다. 꽤 길다. 긴 다리인 셈인데, 부력으로 다리가 물 위에 떠 있다. 여러 명이 걸어도 흔들림도 없고 물 위를 걷는다는 특이한 느낌을 줬다. 호숫물은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보통 저수지 수준의 맑기다. ‘산정’이라는 이름에서 풍겨나온 이미지 때문인지 수정처럼 맑은 호수일 거 같다는 예상을 했는데....
물 위를 걷는 아이들!
호수 둘레는 가족과 한바퀴 돌기에 길지도 짧지도 않을 정도다. 오리배를 함께 타기로 했는데 12시 넘어서부터 운영한다기에 아쉬움을 남기고 발길을 돌렸다. 호수 주변으로 수많은 식당과 찻집이 있었다. 이곳도 얼어붙은 경기가 그대로 반영되지 않나 싶었다. 리모델링한 상가도 보였지만 외관은 대부분 오래된 모습이었다.
분위기 나는 산정호수 폭포
손님 접대가 어느 곳보다 확실한 곳, 산사원
이곳에서 내려와 산사원으로 차를 운전했다. 산사원은 ‘배상면주가’에서 운영하는 술박물관으로 산정호수에서 광릉 국립수목원쪽으로 가는 일동면에 있다. 별 기대하지 않았는데 기대 이상으로 볼 거리와 마실 거리가 있다. ‘풍류’라는 콘셉트를 흐느적거리지고 않고 맞춘 술 박물관이다.
'예까지 오셨으니 술한잔 하고 가시지요'
입장료 2000원은 내도 되고 내지 않아도 된다(글쓴이가 봤을 때). 하지만 어른이라면 2000원을 기꺼이 내려고 할 것이다. 2000원을 내면 두 홉짜리 기념주 한 병과 술 잔 하나를 선물로 주는데 그 잔으로 시음할 수 있다. 배상면주가의 다양한 술이 놓여 있어서 모두 한 잔씩 하다보면 취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술맛을 제대로 보도록 물로 잔을 헹구두록 물과 그릇을 곳곳에 비치해두고 있었다. 거기서 술 한잔 하니 갑자기 기분이 업되면서 먼저 온 일행의 웃음소리와 어우러져 한껏 흥취가 났다. 하지만 함께간 아이들이 “아빠, 운전하셔야죠!”
산사원에서는 전통주 만들기 교실도 열린다!
2000원을 받지만 그 이상으로 답례를 하는 이 곳은 우리나라 어느 박물관보다 손님 접대를 확실하게 하는 곳이다. 그럴듯한 안주도 있다. 하지만 먹을 수 없는 안주다. 전시된 사계절 술 안주상 차림이 그것이다. 저 상을 내다 놓고 거나하게 한잔 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시중보다 더 싸게 배상면주가 선물 세트를 팔고 있어서 두 세트를 샀다. 이제 밖으로 나가서 술 정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커다란 술항아리를 배치해놓은 곳을 지나면, 담양 소쇄원의 ‘광풍각’을 본떠 지은 정자를 비롯해 한옥과 연못, 정원을 테마로 해놓은 곳이 나타난다. 여기서 시간을 조금 보내기로 했다. 술 기운에서 벗어나야 해서 한 시간 넘게 이 곳에서 이거저거를 구경했다.
기분 좋게 산사원을 나와 산사원 박물관 직원이 추천해준 일동온천 주변의 명지원에서 점심을 챙겨먹었다. 일동에서 맛보는 이동갈비였다. 1인분에 2만 6000원짜리 갈비를 2인분 주문하고 갈비탕과 냉면, 된장찌개를 골고루 주문하였다. 1인분이 500그램이라서인지 다섯이서 맛볼 정도는 됐다.
전통 한옥의 명지원 정원
그곳 명지원에서 나오자 이미 시계는 두 시를 넘어 세 시를 향하고 있었다. 산사원에서 예정보다 많은 시간을 써버린 것이다. 수목원 매표소를 통과하니 3시 반이 넘었다. 들어갈 때, 막내가 타고 있던 킥보드를 맡겨놓고 가야 했는데, 다섯 시까지는 내려오란다. 이 드넓은 곳을 1시간 반 만에!
숲 해설사를 따라가다가 아이들이 “여기까지 와서 공부냐?”는 원성에 그냥 가족팀으로 이동했다. 분위기가 호젓하고 사람도 적당히 많아 기분이 좋다. 오후가 되면서 햇살도 더 맑아져 숲길 걷는 날씨로는 최고였다. 다리가 조금 아파져올 무렵 저멀리 카페가 보인다. 아빠가 쏜 김에 확실하게 쏜다! “와~” 부부가 마실 원두 커피 두 잔과 아이들에게 원하는 걸 고르도록 했다. 코코아를 추천했는데 큰 아이는 동생들이 코코아를 주문하는 것을 보고 과자를 먹겠단다. 동생들 코코아를 공유하겠다는 속셈일텐데. 카페 주인장께서 눈치를 채고 코코아 두 잔을 세 잔으로 나눠주시겠다고 했다. 그런데 세 잔을 받고 보니 모두 가득가득 차 있는 게 아닌가? 따뜻한 오후 햇살을 받으면 그곳 카페 밖 벤치에서 30여 분 분위기를 냈다.
세조가 점찍은 광릉 국립수목원
이곳은 조선의 세조 왕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세조의 무덤이 근처에 있어 ‘광릉 임업시험장’으로 불렸다가 나중에 광릉 국립수목원이 되었다. 남양주, 의정부와 가까운 포천시 소홀읍을 중심으로 30만 제곱킬로미터의 땅에 펼쳐졌다.
달콤 따뜻한 코코아
뿌리깊은나무에서 내놓은 <한국의 발견/한반도와 한국사람> ‘경기도’편을 보면, “세조가 이 곳을 자신이 묻힐 땅으로 정하고 풀 한포기조차 베지 못하게 함으로써 조선 왕조가 끝날 때까지 숲이 온전히 지켜졌고, 일본 제국주의도 이곳을 임업시험장으로 보존한 덕분에 제모습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광릉 국립수목원은 한 나라의 왕이 자신이 죽어 뭍힐 곳으로 지정할 정도의 자리에 위치한 때문인지 찾아갈 때마다 참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늦가을에서 이른 겨울에 찾아갔기 때문에 풍성한 숲을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연이 사시사철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듯이 계절 특유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줬다. 특히 남측 주 탐사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만나는 침엽수림 지역은 계절과 상관없이 죽죽 뻗은 곧은 전나무, 소나무 숲이 정말 시원하게 펼쳐진다. 나뭇잎이 다 떨어질 무렵 숲에서 나는 향기와 나무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벌레나 이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내뿜는다는 피톤치드 냄새가 어우러지면서 상쾌한 기분을 더했다. ‘피톤치드’라는 말은 어린아이들까지 아는 단어가 됐지만, 이번 이곳 수목원에서 어떻게 생성되는지를 알게 됐다.
가을에 핀 개나리. 그래도 반갑다!
세조때부터 조성된 숲이라지만 아름드리 거대한 나무보다는 무리를 지어 들어선 나무들 중심의 수목원임을 알 수 있었다. 사전 예약을 해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출입 인원을 적정선에서 유지하면서 더 아름다운 숲으로 보존되고 있었다. 지난 4월 초에 전남 도립 완도수목원에서 우리 가족이 느꼈던 아름다움과는 다른 감동을 주는 수목원이다.
완도수목원은 남도 산 특유의 부드러운 산세를 따라 조성된 활엽수 중심의 난대성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동백나무, 후박나무 등 넓적넓적한 잎이 추위에도 불구하고 붉은 꽃을 피우며, 반짝반짝 빛나는 생기가 완도수목원의 감동이었다면 이곳 광릉수목원은 오랜 시간 보존돼온 숲이 주는 자연스러운 감동 그것이었다.
걷기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숲이 주는 아늑함을 조금은 느끼나 보다. 나무만 있는 곳임에도 많은 사람이 찾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조금 이른 시기에 왔더라면 찬란한 단풍 잔치를 봤을텐데, 우리가 찾아갔을 때는 그 떨어진 잎에서 풍기는 만추의 향기에서 찬란한 단풍의 느낌을 기억해 내야 했다.
인삼과 산개구리도 유명했다
다시 포천의 이야기로 가본다. 위 <한국의 발견/한반도와 한국사람>에서 조선 문신 성임의 글을 인용한 것을 따르면 “천층산이 북쪽에 우뚝하고 한줄기 물이 남쪽으로 흐르는 곳”이다. 수묵화에 나오는 곳처럼 아름다운 고장이라는 표현이 아닐까? 높이가 1000미터 안팎인 산을 천층으로 해석한다면 그런 산이 수두룩한 곳이 포천이라고 한다.
가을은 헤리포터 읽는 계절
포천 사람들이 겨울이면 산개구리를 잡는 것이 유행했을 때가 있었다고 한다. 몸 크기가 9센티미터 안팎인 산개구리는 우리나라와 일본 산간 지대에서 많이 자라는데, 남자들에게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마구 잡는 바람에 산정호수 둘레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귀해졌다고 한다. 지금도 산개구리가 자라고 있을까? 산정호수에서 서울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이동면이 나오는데 여기는 그야말로 갈비와 막걸리천국이다. 이동갈비라는 말에 아이들이 포장마차처럼 이동하면서 파는 갈비인줄 알았다고 대답한다.
포천 여행에 참고한 <한국의 발견/ 한반도와 한국사람> 경기도편, 뿌리깊은나무 발간
포천은 철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산정호수 주변에는 ‘궁예’를 상호로 내건 간판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억새축제로 유명한 산정호수 근처의 명성산(鳴聲山)은 궁예가 왕건에게 지고 도망쳐 오다가 원통함으로 울었던 소리가 산을 울릴 정도로 컸다고 해서 한때는 울음산, 명성산 근처의 패주골은 궁예가 져서 도망친 곳, 망봉은 왕건의 군사가 쫓아오는 것을 망보았던 곳이라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이동막걸리와 이동갈비로 유명한 포천은 한때 인삼재배지로도 유명했다. 강화도와 금산 사람들이 이곳까지 찾아들며 인삼재배지로 떠올랐다고 한다. ‘살아서는 포천 가야 양반이고, 죽어서는 장단 가야 양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살기 좋은 고을이었던 포천 일박이일의 여행을 뒤로하고 포천과 연결되는 47번 국도가 지나가는 우리의 삶터 과천으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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