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수목원과 호랑가시나무 이야기
6월의 아름다운 천리포수목원과 민병갈 박사
일요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아침 아홉시 무렵에 천리포수목원에 들어갔다. 바닷가에 자리하고 있는 그곳 수목원은 마침 서해 로부터 불어 오는 상쾌한 하늬바람을 맞아 싱그러움을 더하고 있었다. 흙에서 온 존재라는 점에서는 나무와 사람이 같기에 우리는 나무를 좋아한다. 그럼에도 그들에 대해 아는 건 그리 많지 않다. 그래도 좋아한다. 머리로는 알지 못하더라도 몸으로, 마음으로 아는 것이 너무 많다.
나무를 너무나 사랑했던 미국 펜실베니아 출신의 민병갈 원장님의 큰 뜻으로 이뤄진 이곳 천리포수목원이 좋다는 말은 여러 번 들어왔지만 인연이 닿지 않아 이제야 그곳에 들를 수 있게 됐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산책길로 접어들었다. 적당이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아침부터 쏟아지는 햇살을 피할 수 있었다.
연휴를 맞이하여 그곳을 방문한 가족 단위 여행객부터 단체 여행객까지 그곳은 사람들로 붐볐다. 숙소로 공개하는 한옥부터 바닷가에 위치한 아담한 슬라브 건물까지 그곳에서 잠자리를 잡으면 밤에도 그곳에서 산책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지 싶다.
우리는 집무실 1층에서 커피 한 잔을 사서 마시며 2층 고 민병갈 선생님의 기념관에 들었다. 꼼꼼하게 메모한 노트에서 당신께서 수집한 공예품까지 그의 많은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유명할 만큼 유명하여 몇몇 출판사에서 내놓은 천리포수목원 사계라는 책도 전시돼 있었다.
민병갈 선생님은 뛰어난 언어 감각으로 우리나라 말은 물론 한문, 일본어, 러시아어, 독일어를 할 줄 알았다고 한다. 한자와 영어, 때로는 일본 글자가 곳곳에 들어간 노트의 메모는 꼼꼼한 그의 성격을 엿보기에 부족함 없었다.
완도호랑가시나무가 가정의 축복을 전합니다
그 분은 식물학자에 버금가는 나무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고 있었다. 1978년, 그러니까 내가 초등생이었을 때 그는 우리 고향 답사여행에서 감탕나무(Ilex)와 호랑가시나무의 자연교잡으로 생긴 신종 식물을 발견하였는데 그게 바로 완도에서만 자라는 희귀종 '완도호랑가시나무'라고 한다. 완도라는 이름이 들어간 식물을 발견하니 무척 반갑다. 호랑가시나무는 크리스마스 때 자주 보아왔던 나무라서 낯설지 않았다. 이 나무의 꽃말은 [가정의 행복]이라고 한다. 왜 가정의 행복이었을까?
예수께서 날카로운 가시관을 쓰고 고난을 받을 때 '로빈'이라는 작은 새가 예수님의 머리에 박힌 가시를 자신의 부리로 뽑아내고자 온 힘을 다하였으나 자신도 예수님께서 쓰신 가시에 찔려 가슴이 온통 붉은 피로 물들어 죽었다고 한다.
그 로빈이 호랑가시나무의 열매를 잘 먹기 때문에 이 나무를 귀히 여기게 되었다. 로빈새가 잘 먹는 이 열매를 함부로 따면 집안에 재앙이 든다는 믿음까지 전해져 호랑가시나무를 신성시하고 성탄을 장식하는 전통까지 생겼다고 한다.
'완도호랑가시'는 우리나라 완도에서만 자라는 희귀품종으로 다른 호랑가시나무 종에 비해 잎이 부드럽다고 한다. 수목원 입구에서 그 호랑가시나무 묘목을 팔고 있었는데 찔레꽃과 함께 구입할까 말까 하다가 그냥 찔레꽃만 구입해오고 말았다… 미리 알았더라면 구입해 오는 건데… 다음에 갈 기회가 있다면 꼭 몇 개를 구해서 선물까지 해야겠다.
민병갈 선생님은 개구리를 무척 좋아했는데 개구리들이 합창하는 시절이 오면 밤늦도록 연못가에 앉아 귀를 기울였다. 그는 "죽으면 개구리가 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한국인의 습성이 개구리와 같다고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평소에는 조용히 지내다가도 뭔가 잡히는 게 있는 쏜살같이 낚아채는 모습에서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갑자기 개구리가 좋아지기 시작한다.
아궁이에 불을 지핀 가마솥 모습의 그림이 너무나 정겹다. 직접 만드셨다는 화투도 눈길을 끌었다. 고도리와 삼봄을 해본 지 얼마이던가^^
기념관 앞으로 펼쳐진 논과 연못, 예쁜 탑을 보면서 한적한 시간을 보냈다. 많은 사람들이 셀카도 찍고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움직이는 모습이 푸른 나무와 어우러져 생동감을 더했다. 불편한 부모님을 휠체어에 모시고 와서 보여드리는 모습도 좋다.
태안은 중부지방에 가까워 나무들에서 풍기는 독특한 기운은 남쪽 섬에서 자라는 나무들과는 다르다. 완도 수목원의 온대림들은 잎이 반짝반짝 빛나며 특유의 기운을 뿜어내는데 이곳 나무들에서는 그런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다만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며 나무 공부를 할 때 너무나 좋은 자연학습장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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