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시는 레베카 수녀님의 청탁전화를 받고
기쁘게 글을 쓸 수 있었다.
소중한 존재인 성령에 대해 쓸 수 있어서 행복했다.
생활성서 8월호에는 예쁜 표지에 걸맞게
하느님의 말씀을 나누는 다양한 내용의 글들이 알콩 달콩 들어있었다.
특집 성령, 가까이 느끼기 편에 있는 "내곁에 계신 성령"을 소개한다^^.
내 곁에 계신 성령
도희주 수산나 | 수원교구 별양동성당 susanna@mustree.com
영가와 찬양으로 만난 성령
모태신앙을 갖고 태어난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냉담하게 되었다. 다음 해 2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되자 마자 어머니께서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왼쪽 팔과 다리에 마비가 온 것이다. 그전에도 가벼운 뇌졸중 증상을 보인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머니의 인생도 안타까웠지만 나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싶어 암담했다. 내가 계획했던 삶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닥쳤다.
다시 하느님을 찾아 집에서 가까운 신림동성당에 나가게 되었고 ‘청년성서모임’에도 등록했다. 성경공부반의 한 형제가 ‘청년성령기도회’에 초대해 주었다. 처음으로 기도회방의 문을 열었을 때 천상의 소리와 같은 아름다운 영가와 기도가 흘러 넘쳤다. 이제까지의 많은 슬픔과 아픔이 위로 받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바로 성령기도회 회원이 되었다.
소중한 생명으로 오신 성령
결혼 후, 듬직한 세 살배기 아들과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런데 셋째가 생겼다. 연년생 아이들을 기르기에 지쳐있던 나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담스러웠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되는 순간부터 생명은 시작된다”는 교수 신부님의 말씀이 떠올랐지만, 내 앞에 닥친 상황이 더 커 보였다.
무거운 마음으로 병원에 다녀오는 버스 안이었다. 삼성산성당 옆을 지나칠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두 손을 활짝 펴고 계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생명은 꼭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입덧이 끝나고 신록이 우거진 5월이었다. 삼성산성지에서 미사 전에 고해성사를 받으며 응어리졌던 마음이 풀림을 느꼈다. 오랜만에 참 평화와 안식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온전한 의탁이신 성령
건강하게 태어난 막내는 무척 순했다. 하지만 태어난 지 백일도 되기 전에 생사를 넘나드는 일을 겪어야 했다. 장이 상하여 혈변증세를 보인 것이다. 대학병원에서 공기로 겹친 장을 펴는 시술을 받던 중, 장이 파열되며 아이의 호흡이 멈춰버린 것이다. 황급히 수많은 의사들이 달려왔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수술 서약서에 서명하며 우리 부부는 새 생명인 막내를 고맙게 생각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의무감이 아닌 따뜻한 사랑을 막내에게 주지 못한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막내는 수술 후 신부님으로부터 병자성사까지 받았다. 이것이 우리 막내의 유아세례가 되었다.
막내는 다행이 빠르게 회복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남편은 막내를 살려주시면 세속과 타협했던 가치관을 주님께로 온전히 돌리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래서 끌려 다니듯 다녔던 직장도 그만두고 어린 세 아이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직장으로 옮겼다. 퇴원 후 우리 부부는 삼성산성지 기도회에 갔다. 안수를 받던 중에 평생 가슴에 새기고 살아야 할 축복의 말씀을 들었다. “네가 세 아이들을 내게 봉헌하고 나의 뜻에 맞게 살면 현실적 모든 어려움을 돌보아 줄 것이고 축복해 주리라”라는 말씀이었다. 큰 힘과 위로로 다가왔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 된 막내는 누구보다 밝고 건강하다. 심부름도 앞장서 잘하고, 식사시간을 넘기기라도 하면 엄마 아빠가 언제 ‘밥 먹었는지’도 꼬박꼬박 챙긴다. 홀로 되신 할아버지의 다정한 말벗도 되고 산책 친구도 된다. 비록 정규수업 후 ‘기초탄탄’ 공부반에 잠시 들렀다 오지만, 담임 선생님께서는 값진 칭찬을 해주셨다. “정민이는 영혼이 참 맑은 아이다.”
일으켜 세우시는 성령
남편은 남녘의 작고 아름다운 섬이 고향이다. “아기는 젖을 먹지만 성숙한 사람은 단단한 음식을 먹습니다(히브 5,13-14 참조)”는 말씀이 있다. 얼마 전, 하느님은 남편이 보다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원하셨다. 당신을 향한 믿음과 축복만을 의지해 세상을 헤쳐나가기를 바라신 것이다. 정들었던 회사생활을 그만두고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형 에사오의 장자권을 가로채 이십 년을 타지에서 보내다 고향으로 돌아간 야곱이 있다(창세27-34장 참조). 그는 형 에사오를 만나기 전날 밤 ‘오직 혼자서’ 하느님과 축복을 두고 밤새 씨름한다. 하느님 앞에 자신을 정화하고 정화해 새벽이 동터올 무렵 결국 축복을 받아낸다. 남편도 이렇듯 치열하게 하느님과 대면했고 축복을 받아냈다. 자책과 두려움을 넘어 형 에사오를 만나러 첫 발을 내디뎠던 야곱처럼!
언제 어디서나 내 곁에 계신 성령
요즘 나의 아침 잠을 깨워주는 것은 휴대폰의 복음말씀 도착 소리다. 지금은 통신망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나 거의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 받는다. 복음 말씀과 신앙정보도 통신망을 타고 절대속도로 다가오는 것만큼, 세상의 온갖 유혹도 실시간으로 다가온다. 가장 빠르다는 빛의 속도는 절대속도로서 초당 약 30만 킬로미터를 갈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빛의 속도를 뛰어넘는 게 바로 성령이라고 생각한다.
성령은 바람이시며 불고 싶은 대로 분다(요한 3,8). 어느 곳에도 계시며 우리를 도와주신다. 우리 안에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시며 기도해 주신다(로마 8,26). 누구에게 화가 날 때,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 날 때 성령께 의탁한다. 그러면 인간의 지혜로는 풀 수 없었던 일이 풀리고, 행복해질 것이라는 희망도 생기고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화가 찾아온다. 성령은 이미 내 곁에 계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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