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가톨릭 뉴스 지금여기에 연재한 여성순교자 편^^!

하느님을 사랑한 여성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9. 21. 11:54

본문

사랑의 길’에서 지혜를 만나다[하느님을 사랑한 여성들-9] 성녀 박 안나, 하느님의 종 이 안나, 심 바르바라
도희주  |  editor@catholicnews.co.kr
폰트키우기폰트줄이기프린트하기메일보내기신고하기
승인 2012.09.20  20:24:48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요즘네이버구글msn

  
▲ 강화도 바다의 별 청소년 수련원 순교자 현양 동산 ⓒ 박홍기

어느덧 높은 하늘에 밝은 햇살이 눈부신 가을이다. 순교로써 신앙의 뿌리를 내린 한국천주교회는 일만 위 순교자들의 행적을 기리며 9월을 ‘순교자 성월’로 보내고 있다. 우리의 신앙 선조 순교자들은 세상을 뜨겁게 달궜던 지난 8월의 태양보다 더 뜨겁게 살다간 분들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나도 2010년 여름, 가족과 함께 3주간에 걸쳐 전국 성지순례를 한적이 있다. 갑자기 닥쳐온 삶의 어려운 문제 앞에서 치열한 믿음이 가득했던 성지를 순례하면 좀 더 빨리 해결책을 찾지 않을까 해서였다. 역시 발의 기도는 마음의 기도가 되어 생각지 않았던 은총까지 듬뿍 받은 체험을 했다. 엄마 아빠에게 영문도 모르고 끌려 다녔던 초등학생 큰아이는 절두산성지에 도착하던 날, ”이러다가는 우리도 순교하겠다!”며 엄살을 부리기도 했었다.

주님께 받은 사랑을 되돌려 드리는 것

순교(martyrdom)는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죽음을 당하는 일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는 현대의 일상생활에서도 존재한다.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자신의 큰 고통을 감내하는 행위가 그것으로, 백색 순교•양심의 순교다. 하느님을 향한 믿음의 근본은 ‘주께서 내게 주신 사랑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랑 때문에 목숨까지 내어놓을 수 있다.

하느님을 사랑한 여성들 중에는 수많은 순교자가 있다. 실제로 목숨을 내어놓았거나 죽음보다 더한 인고의 삶을 견딘 분들이다. 우리나라에도 여성 순교자가 많이 있다. 모진 고문 속에서도 너무나 꿋꿋하여 “이 여자는 사람이 아니라 신”이라는 찬탄을 받았던 한국천주교회 최초의 여성 회장 강완숙 골룸바와 형벌장과 옥에서 동정녀의 품위와 애덕을 당당히 증거했던 김효주 아네스, 김효임 골룸바, 정정혜 엘리사벳 성녀의 행적은 눈부시다. 그러나 오늘은, 많이 주목 받지는 못했지만 순수하고도 강한 믿음으로 우리에게 큰 여운을 남겨 준 이들을 만나보고자 한다.

그 주인공들은 103위 성인인 ‘박아기 안나’와 124위 하느님의 종인 이시임 안나, 심조이 바르바라다. 이들은 민들레와 같은 영성을 보여준다. 민들레는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곳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고 환하게 피어난다. 이러한 수많은 민들레 신앙으로 오늘날 한국천주교회가 풍성한 모습으로 자리잡았다고 생각한다.

  
▲ 강화도 바다의 별 청소년 수련원 순교자 현양 동산 ⓒ 박홍기

하나, “마음껏 사랑하기로 힘 쓰겠다”

박아기 안나(1783-1839)는 강원도 강촌 출신으로 교우 집안의 자녀로 성장했다. 그녀는 교우 태문행과 결혼해 슬하의 2남 3녀를 신앙으로 열심히 키우다가 순교하였다. 그녀의 출신 배경이나 삶의 과정에는 그리 눈길을 끌 만한 것은 없다. 하지만 나는 2010년에 성지와 관련된 103위 성인들과 124위 ‘하느님의 종’의 행적을 정리하면서 그 어떤 성인의 말보다 박아기 안나의 한 마디가 마음 깊이 와 닿았다. 그녀는 기억력이 약해 교리와 경문 외우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성녀는 “나는 천주를 내가 원하는 대로 알지는 못해도, 적어도 마음껏 사랑하기로 힘을 쓰겠다”라고 고백하며 순교하기를 열망했다.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식의 길과 사랑의 길이다. ‘벼 이삭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처럼, 지식의 길 끝에는 지혜와 깨달음이 있다. 사랑의 길 또한 지혜로 시작한다. 박아기 안나는 사랑의 길을 과감히 택했다. 나는 한 평범한 아녀자의 생각에서 어떻게 이런 지혜의 말씀이 나올 수 있었을까 감탄했다. 이 또한 성령의 은총이 함께 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성녀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천사의 말을 하고 인간의 모든 언어를 말한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1고린 13장 참조). 자신의 한계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다짐한 그녀의 기지가 돋보인다.

둘, 절망대신 희망을 택하다

박아기 안나와 함께 나의 눈길을 끈 여성 순교자는 이시임 안나(1782-1816)다. 그녀는 시복시성을 기다리고 있는 124위 하느님의 종 가운데 한 분이기도 하다. 그녀는 1782년 충청도 덕산의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자라면서 천주교 신앙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한 동정녀 공동체에서 동정을 지키며 그들과 함께 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동정녀 공동체로 데려다 주기로 했던 교우 뱃사공은 그녀의 자태에 반해 강제로 그녀를 아내로 삼았다. 그 뱃사공은 몇 년 후 세상을 떠난다. 이에 경북 영양군 교우촌에서 과부로 어린 아들을 홀로 키우며 생활하던 이안나 하느님의 종은 1815년 교우촌에 들이닥친 포졸들에게 체포된다. 그녀는 옥에 갇혀 있던 동안 품속에서 외아들이 굶어 죽어가는 고통을 견디어내며 순교하였다.

샤를르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에 보면 달레 신부님도 이시임 안나의 사연과 여성에 대한 조선의 풍습에 안타까움을 나타낸다. “동정녀가 되고 싶었으나 뱃사공에 의해 강제로 결혼한 이 안나는 비통하기는 하나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조선의 풍습은 부모나 남편의 집을 떠난 처녀는 누구든지 먼저 차지하는 자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천주교회사 중, 샤를르 달레, 63페이지 참조).

이 안나는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상황에 맞부딪쳤지만 절망 속에만 빠져 있지 않고 삶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성덕으로 승화시켰다. 우리도 살아가다 보면 뜻하지 않았던 상황에 놓이게 될 때가 있다. 그러할 때 원망과 좌절에만 빠지지 말고 지금 이 상황에서 나에게 원하시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을 수 있는 지혜와 희망이 필요하다. 이 희망으로 삶을 밝혀가는 것이 바로 백색순교가 될 것이다.

셋, 고통 중에서도 기쁨을 실천하다

전주의 한옥마을 초입에는 이국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동성당이 우뚝 서있다. 그 아름다움이 유럽의 어느 도시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줄 정도다. 하지만 이 곳이 수많은 순교자의 애환이 서려있는 전주옥터라는 사실은 의외로 덜 알려졌다. 이곳에서 바로 이번 글의 마지막 주인공인 심조이 바르바라(1813-1839)의 믿음을 만나볼 수 있다.

심 바르바라는 교우 집안으로 시집을 왔는데, 그녀의 시할아버지가 순교자 홍낙민 루카다. 시아버지 홍재영 프로타시오는 1840년에 순교했고, 남편 홍 토마스도 1866년에 순교했다. 그녀는 시아버지의 명성아래 그에게 피신해 오는 교우들을 불편해 하지 않고 헌신적으로 돌보아 주었다. 그녀 역시 기억력이 약해 주요 교리 외에는 외울 수가 없었지만 그녀의 신앙은 깊었다.

체포되어 고문을 받을 때에도 그 고통을 하느님을 위해 받는 것으로 생각하여 고통의 신음소리를 내지 않고 평온함을 유지했다. 한 살배기 막내 아들이 옥중에서 굶주림과 병으로 천천히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고통도 참아냈다. 육신은 죽더라도 ‘영혼이 승천하는 순교’를 갈망했으나 결국 형벌의 고통으로 옥에서 병사하였다. 그녀가 순교한 나이는 26세였다. 요즘으로 보면 아직 어린 나이인데 다른 이를 위한 사랑을 기쁘게 실천한 그녀의 삶은 자신을 태워 주변을 밝히는 촛불처럼 빛난다.

작은 나눔이 민들레 홀씨 되어

신앙 선조들이 자신의 소중한 생명으로 하느님을 증거했다면,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하는 현대인들에게 요구되는 순교의 정신은 어떤 것일까? 본당 활동을 하다 보면 수많은 평신도의 드러나지 않는 수고와 노력으로 교회가 유지되고 있음을 실감하곤 한다. 자신의 시간을 나누며 따뜻한 이웃 공동체를 가꾸는 반장과 구역장, 레지오 단원의 모습에서 신앙 선조들의 순교 정신을 발견한다.

20대 초반, 나는 중풍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간호하며 외로운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그때 수시로 우리 집을 방문해 따뜻한 위로와 기도를 해주시던 레지오 단원들의 마음이 아직까지도 고맙게 기억되고 있다. 이분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나의 신앙도 튼튼하게 자리잡을 수 있었다.

또한 강정마을이나 두물머리 등 사회의 여러 곳에서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못하고 신앙인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이분들 모두 이 시대의 순교자들이 아닌가 한다. 우리 모두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을 향한 사랑으로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재능, 부를 나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신앙 선조들로부터 받은 순교의 마음이다. 이 마음이 민들레 홀씨처럼 널리널리 퍼지면, 예수님께서 이미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 왔음을 누구나 느끼면서 행복해할 수 있지 않을까.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