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과 연꽃의 향기, 아탈야와 마르가리타 왕후 | ||||||||||||||||||
[하느님을 사랑한 여성들-8] | ||||||||||||||||||
| ||||||||||||||||||
오늘날 우리 사회는 오랜 가부장 문화에서 탈피하여 많은 변화를 이뤄 가고 있다. 특히 정치, 경제, 문화의 많은 영역에서 여성들의 지도자적 역할이 새롭게 두드러지고 있다. 여성들의 주된 관심사도 사회의 기본 약자였던 과거의 모습에서 벗어나 좀더 성숙한 자아를 완성하고자 하는 원의로 모아지고 있다.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삶의 동반자인 남성들과 진정한 우정을 나눌 때 이러한 삶을 이룰 수 있다. 아직까지도 그리스도의 남성성을 이유로 여성 사제 서품을 거부하며 여성의 교회 지도력을 거부하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모습은, 사회 몇몇 곳에 남아 있는 가부장제의 마지막 성역으로 느껴진다. 이번 글에서 다룰 왕후들은 소위 ‘축복받은 인생’을 살았다. 물질적 풍요와 권위가 함께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참된 왕이 누구신지 알았기에 그분께 먼저 순종하고자 했다. 세상의 화려함 속에서도 진리를 발견하고 따르는 순수함을 보여 주었다. 이들은 신분과 시대를 뛰어넘어 하느님의 유일회적인 초대에 응답을 드렸다. 가시에 묻혀 버린 장미의 향기, 아탈야 왕후 피게 하소서 주님 <장미의 기도> 이해인 수녀
여성 신학자들에게는 두 가지 작업이 있다. 첫 번째는 엘리자베스 휘오렌자나 필립스 트리블 같이, 가부장제 안에서 무시되고 소외되었던 여성들의 경험과 눈으로 성서를 읽고 다시 재해석하는 작업이다. 두 번째는 이러한 첫 번째 작업을 통해 성서와 교회의 전통 안에 왜곡돼 묻혀 있는 여성들을 찾아내고 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두 번째 맥락에서 열왕기 하권 11장 1-17절에 나오는 아탈야 왕후를 살펴본다. 열왕기 11장의 그녀를 보면 죽은 아들인 아하즈야를 대신해 섭정을 담당하는 왕태후로 나온다. 그녀의 섭정 기간은 여섯 해로 나와 있고, 이를 지키기 위해 친척들을 다 죽이고 친손자마저 죽이려 한다. 왕후는 역사적으로도 인륜을 저버리고 권력을 탐한 인물의 전형이 되어 17세기 프랑스 극작가 라씬느에 의해 하느님 정의의 심판을 받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열왕기 하권 11장의 바로 앞부분인 10장 12-14절을 보면 의문을 갖게 된다. 이미 엘리사의 제자에 의해 임금으로 세워진 예후가 유다 임금 아하즈야의 형제들을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였기 때문이다. 또한 열왕기 하권 11장 2절에 아탈야 왕후가 죽이려 했다는 친손자는 자신의 딸에 의해 주님의 집에서 숨겨져 키워졌다. 이는 모든 권력을 장악한 그녀가 딸과 손자의 운명을 묵인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로 볼 수 있다. 자신의 아들마저 어느날 갑자기 살해되고 친인척이 모두 죽어가는 상황에서 왕후가 믿을 것은 자신뿐이었다. 아탈야 왕후는 주변의 위협에 휘둘리지 않고 직접 왕태후의 자리에서 자신과 조국을 지키려 했다. 하지만 여섯 해 뒤 반란에 성공한 여호야다 사제에 의해 그녀는 권력욕에 사로잡혀 혈육을 살해한 비정한 이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그러나 왕태후의 재위 시절 유다 왕국의 평화가 그녀의 탁월한 정치 감각과 인품을 짐작케 한다.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는 장미꽃 같은 그녀의 업적이 날카로운 가시의 존재로서 묻혀 버린 것이 안타깝다. 사랑으로 피어올린 연꽃의 향기, 마르가리타 왕후 겸손으로 내려앉아 고요히 위로 오르며 <연꽃의 기도> 이해인 수녀
혼탁한 연못 위로 순결한 꽃잎을 터트리는 삶을 살다 간 성녀가 있다. 바로 스코들랜드와 임산부의 수호성인인 마르가리타 왕후(1046-1093)다. 그녀는 앵글로색슨 왕조의 마지막 임금인 에드워드와 독일 공주 아가타 사이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다.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잉글랜드마저 노르망디의 침략을 받게 되자 삼촌이 왕으로 있는 헝가리로 망명길을 떠난다. 가는 도중 폭풍에 배가 파선되어 스코틀랜드에 임시로 정착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당시 스코틀랜드 왕인 말콤 3세를 만나 결혼하고 6남 2녀의 어머니 역할과 국모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얼마 전, 필자도 법정 스님의 글을 읽으며 스스로를 되돌아 본 적이 있다. “요즈음 결혼하는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상대편 덕을 보려고 결혼한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힘든 일이 생기면 견디지 못하고 불화가 일어난다. 그러나 상대편의 약점과 단점을 안타까이 보고 내가 도와주어야겠다고 결혼한 사람들은 모든 어려움들을 잘 극복해 간다.”는 내용이었다. 마르가리타 왕후도 이러한 아름다운 마음을 지니고 결혼 생활을 시작했기에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고, 통치하는 나라에까지 그 사랑의 향기를 널리 퍼트릴 수 있었던 것이다. 배움이 짧은 말콤 3세는 비록 내용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아내가 책을 읽으면 어깨너머로 보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왕후의 조언을 받아들여 백성의 노략질을 금지했으며 유럽의 신기술을 도입해 농업을 발전시켜 식량난을 해소했다. 또한 훌륭한 성직자를 초빙해 교회를 새롭게 하고 학문과 예술을 발전시켰으며 빈민 구제에 힘쓰고 고아들을 돌보았다. 부활절과 성탄절에는 왕과 함께 가난한 이들의 발도 씻어 주었다. 왕후의 이러한 겸손한 행동의 근원은 기도였으며, 늘 자신을 잘 성찰하는 고해성사였다. 배우자의 뜻을 진심으로 존중하며 그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도운 말콤 3세와 마르가리타 왕후의 사랑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따뜻한 감동을 안겨 준다. 사랑이 그대를 손짓하여 부르거든 따르십시오. 비록 사랑의 날개 속에 숨은 아픔이 - 칼린 지브란 |
10월에 쓴 여성 교사편 훌다 예언자 이야기^^~! (0) | 2012.10.22 |
---|---|
가톨릭 뉴스 지금여기에 연재한 여성순교자 편^^! (0) | 2012.09.21 |
"살림"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 원고 (0) | 2012.07.24 |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보석' 노리치의 줄리안 (0) | 2012.06.21 |
힐데가르트, 창조의 무한한 축복을 노래하다 (0) | 2012.05.23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