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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을 뛰어넘은 순수한 사랑, 시몬느 베이유

하느님을 사랑한 여성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1. 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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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을 뛰어넘은 순수한 사랑, 시몬느 베이유

2013년, 희망의 태양이 떠올랐다. 새해를 맞아 누구에게나 따뜻한 빛을 주시는 하느님 은총의 햇살도 온 세상에 가득하길 기원한다(마태 5, 45 참조). 어느덧, 지난해 2월부터 연재했던 ‘하느님을 사랑한 여성들’의 마지막 편이다. 새해 아침에 마지막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하지만, 하느님의 인간 창조를 이해하는 시몬느 베이유의 사상을 통해 다시 미래를 꿈꾸어 본다.

인간의 존재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exister’에서 ‘ex’는 ‘밖에’라는 뜻의 접두어며, ‘ister’는 ‘놓여있다’는 의미다. 즉, 진정한 존재이신 하느님은 우리가 존재할 수 있도록 자기를 지워 없애셨다. ‘창조는 하느님의 자기 비움으로, 우리를 위해 선과 하나이신 그 필연을 벗어버리신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감히 나 또한 부족한 이 글의 끝이, 우리네 삶의 현장에서 새로운 창조로 태어나기를 소망한다.

  
▲ 시몬느 베이유 (사진/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이번에 살펴볼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느 베이유(Simone Adolphine Weil)는 세 번의 신앙체험을 통해 가톨릭교회의 교리를 존중했지만, 결국은 교회 밖의 사람들과의 분리를 거부하며 세례를 받지 않고 임종했다. 그녀는 제 1차,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인간 실존의 한계를 체험했고, 자신의 지성과 행동을 다하여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을 사랑하고자 했다. 서른넷의 나이로 마감한 그녀의 짧았지만 깊고 순수했던 사랑을 살펴보고자 한다.


중력을 이기는 예수님의 탄생

얼마 전, 오랜만에 세 아이들과 함께 본당 성탄 자정미사에 참석했다. 촛불을 든 신입 복사단을 선두로 신학생, 사목위원, 보좌신부가 입장하고, 마지막으로 주임신부께서 아기예수님을 안고 입장했다. 미사 중 구유예절을 하며 한없이 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누워있는 신(神)을 보니 새삼스레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큰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를 길러본 엄마들은 안다, 갓 태어난 생명은 너무나 연약해서 주변의 사랑이 없으면 잠시라도 생명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을. 그런데 전능하신 신께서 이렇게 한없이 나약한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내려오신 것이다. 시몬느 베이유는 이것을 물질계의 원리인 중력을 뛰어넘는 하강은총이라고 설명한다.

우주 속 태양계에 속해 있는 지구라는 별! 그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는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 육체를 지닌 인간의 이기적인 자아, 고통에 굴복해 버리는 우리네 모습이 우리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중력의 모습이다. 이러한 중력의 치료법은 ‘빛을 받고 자라는 엽록소’처럼 “빛이고 말씀이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요한 4, 34 참조)이라고 베이유는 알려 준다.


기쁨과 괴로움이 똑같이 귀중한 선물

베이유 사상의 또 다른 중심축은 고통에 대한 이해다. 은총의 거울인 또 하나의 하강운동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드러난다. 감각적으로는 하강이지만 영적으로는 상승이다. 신의 자비는 위안이 없는 고통의 밑바닥에서 빛난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부르짖음까지 추락해서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신의 사랑 그 자체인 본질을 만나게 된다. 즉 창조되었던 우리의 존재가 없어지고 신의 존재가 다시 우리 안에서 재창조되는 것이다. 태초에 인간의 자리를 마련하시기 위해 없어진 당신의 자리를 우리가 마련해 드리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베이유는 기쁨과 괴로움이 똑같이 귀중한 선물이라고 한다. 들판의 나리꽃들이 아름다운 것(마태 6, 28)은 자기 뜻대로 움직이거나 색깔을 위장하려고 하지 않고 자연의 필연성이 가져다 준 모든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통을 겪을 때마다 우주, 세계 질서, 세상의 아름다움, 신에 대한 복종으로 인내하면 고통은 십자가의 못처럼 우리 몸속으로 들어와 신과 영혼을 갈라놓은 두꺼운 장막을 꿰뚫는다. 고통을 고통으로만 느끼면 중력의 법칙에 빠지지만, 존재를 재창조시키는 의미를 알고 인내할 때, 우리는 이 세상에 다시 하느님의 자리를 내어 드리게 된다.


경계를 넘어선 사랑에 투신

시몬느 베이유는 1909년 2월 3일 유태계 의사인 아버지와 다정한 성품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그녀는 타고난 연민 정서를 바탕으로 평생 고통 받는 이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22살에 철학교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지역 노동자들의 조합결성을 도왔고 결국은 노동 현장의 일꾼으로 직접 뛰어들었다.

그녀는 중산층의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었지만, 늘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와 함께 생활하기를 고집했다. 공장에서 노예처럼 일하던 여공의 체험을 통해, 첫 번째 신앙체험인 그리스도교는 핍박 받고 자아를 잃어버린 ‘노예들의 종교’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두 번째 신앙체험은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당에 갔을 때 하느님 앞에 나체가 된 성인의 자기 비움과 신의 채움을 묵상하면서다.

시몬느 베이유는 노동자들을 도와주던 중에 만난 페렝 신부와 신앙에 대해 진실한 우정을 나누었으며, 하느님의 계시가 교회 안에 있음을 확신했다. 그러나 교회 밖에 있는,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며 세례 받기를 거부했다. 정치·경제적으로 소외되고 고통 받는 이들을 내 몸처럼 여기며,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서는 전선의 최전방에 낙하산 간호부대를 투하하고자 하는 등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구상했다. 결국 쇠약해진 몸으로도 고통 받는 이들과 같은 양의 식사를 고집하다가 1943년 8월 24일 영국에서 임종에 이른다. 그녀의 임종 모습은 너무나 평화롭고 온화했다고 전한다.

그녀는 세 번째 신앙체험은 살렘수도원에서 이뤄졌다. 그레고리안 성가의 장엄한 음률을 들으며 자신을 따뜻이 어루만지는 하느님의 현존을 확신했다. 베이유는 극심한 편두통으로 평생 시달렸는데 이 수도원에서 우연히 소개받은 영국 시인의 시 구절을 두통이 심할 때마다 암송하며 고통을 견디었다고 한다. 자주 주기도문을 외우며 생활했으며, 세례 받지는 않았지만 지성으로 철저히 하느님을 찾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황금률을 구체적으로 실천한 그녀의 순수했던 삶과 사랑은 우리에게 깊은 여운을 준다. 끝으로 그녀가 이해하고 사랑했던 신(神)의 사랑이 잘 담겨 있는 아름다운 시 하나를 함께 읽어보자.


<사랑>

-조지 허버트(1593~1633)

사랑이 나에게 어서 오라 말하나 
내 영혼은 뒷걸음치니
내 죄와 허물 탓이라네
하지만 명민한 사랑은 
시작부터 꾸물거리는 나를 내려다보며
가까이 다가와 다정한 목소리로
무엇을 바라는지 묻고 있네

내가 대답하네
여기에 손님으로 어울리지 않아요
사랑이 말하네
내가 곧 그리 되리니
나, 아무 가치도 없는 내가?
오, 사랑하는 이시여
나는 감히 당신을 쳐다 볼 수 없어요
사랑은 내 손을 잡고 미소로 답하네
나 아닌 누가 그 눈을 만들어 주었지?

진리이신 주님, 
내가 두 눈을 망쳤어요
내 부끄러움이 마땅히 가야 할 곳으로 가게 내버려 두세요
사랑이 말하네
그 죄를 누가 지고 갔는지 너는 알고 있단다
내 사랑, 그렇다면 복종하지요
사랑이 말하네
이리 앉아 내 살을 먹어라
나는 자리에 앉아 받아먹었다

 
 

도희주 (수산나)
1971년 대구 출생, 가톨릭대 신학과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서강대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주석성서>, <미사의 신비>, <성찬의 9일 기도>, <연옥을 피하는 방법>의 편집과 번역을 담당했다. 2011년 3월 자녀 세 명과 함께한 전국 성지순례책 <햇살 속으로>를 집필했으며 가톨릭 영성을 담은 책을 기획·출판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http://oturo.co.kr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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