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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 권의 책이 되어주실래요?

햇살 아빠의 생각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4. 6.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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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우리 동네 리빙 라이브러리(Living Library)를 다녀와서


'지나온 세월을 얘기하자면 소설 10권으로도 모자라다'면 글로 쓰지 말고 말로 해주세요!


저녁 식사를 마치고 봄바람이 불어오는 동네 길을 걸어 과천시의회 북카페에 도착하였다. ‘Living Library’에서 대출한 살아있는 책을 보기 위해서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한 권의 책입니다“

“<Living Library>이벤트는 로니 에버겔이 2000년 덴마크에서 열린 한 음악 페스티벌(Roskilde Festival)에서 창안했다. 유럽에서 시작되어 빠른 속도로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는 신개념의 ‘이벤트성 도서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대화하고 소통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서로 잘 알지 못해 가질 수밖에 없었던 타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고정관념을 줄이자는 의도로 기획된 행사. <Living Library>는 '책'으로 자원한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 그 '책'들과 대화를 통해 그들을 이해하려는 '독자'들, 그리고 그 둘 사이를 이어주는 도서관이 참여하여 진행함.” (제목과 내용 출처: http://thinkcafe.org에서 재인용) 


1970년 후반에 우리 마을에서 태어난 토박이 문인순 씨가 첫 번째의 살아있는 책이 되어주셨다. 그는 30년 살아온 길을 담담하게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그중에 일부를 기억나는 대로 적으면 다음과 같다. 물론 ‘살아있는 책’ 만큼 생생하지 못하다.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마을은 지금 과천 경마장과 서울랜드가 있는 막계립니다. 경마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나는 그곳에서 여름이면 포도와 오이 서리를 하고 가을이면 들깨 꽃과 메밀 꽃을 보면서 자랐죠. 가시돌기가 돋은 오이를 맨살로 느끼면서 옷 가득 서리했을 때도 있었어요.


우리 집터는 지금의 경마장 안에 있어요. 경마장과 서울랜드가 들어서면서 그 집을 떠나 근처 비닐하우스 생활이 시작됐어요. 우리 집은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나는) 용돈이라도 받은 날이면 군것질거리 대신에 번개탄이나 라면 등 가족 모두에 필요한 물건을 사다 놓곤 했다고 (부모님과 이웃들로부터) 듣곤 했어요.


그곳 비닐 하우스촌 아이들은 본드를 불고, 술을 마시고 어린아이들이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했어요. 나도 중학교 때 껌 좀 씹었죠(웃음).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는 개에게 물리기도 했고요.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가니 또래가 없어지더라고요. 그 마을에서는 위아래로 너다섯 차이가 나더라도 친구처럼 지냈는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달라지더라고요. 과천초등학교를 거쳐 문원중학교, 과천여고까지 (과천) 시내 학교를 나왔죠. 집안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나는 이미 생활전선으로 나올 준비를 했어요.


사채로 작은 식당을 열었어요. 선이자를 30% 가까이 떼는 사채 이자를 갚지 못해 무서운 사람들이 우리 집까지 찾아오는 일을 겪으면서 빚은 다 갚았어요. 경험이 없었기 때문인지 은행에서 돈을 얻는다는 생각을 못했던 거죠.” 


살아있는 책 인순 씨 옆에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기쁨과 슬픔을 함께했던 네 살 아래 이웃 동생이자 친구인 종숙 씨도 나와 있었다. 종숙 씨가 가끔 추임새를 넣어주면 분위기가 더 살아났다. 살아있는 책의 눈은 붉어지기도 했고, 눈물이 되어 흘러내리기도 했다. 이야기가 잠시 중단되거나 앞뒤가 잘 연결되지 않을 때, 옆에 앉아서 도움을 주던 분이 질문을 통해 풀어나갔다.




‘글자’에 이미 점령당했다는 ‘말’을 전자책 시대에 다시 만났다. 그 자리에 모인 15명 안팎의 독자들은 살아있는 책으로부터 느낌과 감정을 받으면서 두 시간 가까이 빠져 들어갔다.


살아있는 책이 되어 주었던 문인순 씨는 지금 어려운 이웃을 위한 무료급식소 운영에서 붕붕도서관이라는 비닐하우스촌 학생들 모임터 마련까지 자기 생각을 실천해가고 있다. 그가 우리에게 들려줬던 얘기 가운데 하나가 더 떠오른다.


“나쁜 마음으로 번 돈은 그 결과도 안 좋게 끝난다고 생각해요.”



스마트폰에서 책을 내려 볼 수 있는 속도의 시대에 말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글자와 움직이는 화면에 대한 반항만은 아닐 것이다.

(사진 출처: 서형원 https://www.facebook.com/seohyung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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