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서소문밖 네거리성지 “한국 최대의 순교지” [서울 2]

성지_햇살속으로/수도권

by 열우 2010. 9. 1. 14:31

본문


미리 알아두세요~ 

한국천주교회 박해기간 내내 주로 평신도 지도층 신자들이 참수되어 순교한 최대의 순교지다. 서소문은 서소문동 큰길에 있던 서남간문(西南間門)으로, 일반 통행로이면서 광희문(光熙門)과 함께 시체를 성밖으로 옮기는 통로였다. 서소문 밖 형장은 현재 서소문공원 인근이었다. 서소문밖 네거리성지에서는 103위 성인들 중에서 44명의 성인∙성녀가, 124위 시복시성 추진 대상자 중 25명이 순교한 한국최대의 순교지다. 형장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서소문공원이 조성됨으로써 공원 안에 ‘서소문밖 순교자 현양탑’을 제작하여 지난 1999년 5월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의 집전으로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주소 : 서울시 중구 서소문공원(02-312-5220)

참고사항 : 순교현양탑 참례 및 묵상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 현양탑 앞에서 미사)



신학교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서소문 밖 네거리 성지’로 향한다. 서소문 순교성지는 새남터와 더불어 조선시대 공식 처형장이었다. 이 형장에서 순교한 신자로는 1801년 신유박해 때, 한국교회의 공동체를 설립한 이승훈 베드로,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선조가 있다. 또한 한국 최초의 선교사였던 주문모 신부님을 도와 초기 교회 공동체의 활성화에 힘썼던 여성 평신도 회장 강완숙 골룸바와 백서 사건으로 유명한 황사영 알렉시오가 있다. 1839년 기해박해 때는 남명혁 다미아노, 정하상 바오로,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정하상 바오로의 여동생인 등이 있다. 정약종 선조와 정하상 바오로 성인, 그 여동생 정정혜 엘리사벳 성인은 믿음 때문에 부자와 부녀가 한 시대를 지나서 또다시 한 곳에서 순교하였다. 순교의 믿음은 얼마나 강건한 것일까 생각해 본다.

1866년 병인박해 때는 3대가 같이 순교한 남종삼 요한(아버지는 공주황새바위에서 아들은 전주 초록바위에서 순교)과, 정의배 마르코, 우세영 알렉시오 등의 성인이 참수형으로 순교한 곳이다. 

이곳은 103위 순교성인 중 44위께서 순교하신 곳이고 교황청에 시복 청원중인 ‘하느님의 종’ 27위가 순교하신 거룩한 성지이다. 이곳에서 순교하신 수많은 순교자 분들 중에서 특히 강완숙 골롬바는 지식과 재치를 겸비하고 있었다. 그녀는 시어머니와 전처의 소생인 아들 홍필주 필립보까지 굳은 신심으로 전교시키고 신유박해가 일어나기 전까지 주문모 신부님을 6년 동안 자신의 집에 숨겨 모셨으며, 신자들의 집회장소로 자신의 집을 내어놓아 윤점혜 등과 함께 동정녀 공동체를 이끌기도 했다. 그녀는 3개월 동안 옥에 갇혀서 온갖 고문을 받으면서도 포졸들에게 교리설명을 하였고, 5월 22일 서소문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한 뒤에도 시신이 진흙구덩이에서 전혀 썩지도 않고 악취도 나지 안았을 뿐만 아니라 얼굴빛과 피부색이 생전과 똑같았다고 전한다. 

서소문 순교성지에서 참수한 예비신자로서 안동 김씨 명문대가의 후손인 김백숙이라는 가난한 선비의 믿음이 숭고하다. 그는 과거공부에 정성을 쏟았지만 어지러운 세상에 마음을 버리고 성리학과 노자 장자의 책을 읽다가 죽어도 불멸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천주교 교리를 깊게 검토하고 연구한 끝에 확신을 가지고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부인과 일가친척과 친구들까지 강하게 반대하였으나 “내가 천주님을 안 뒤로, 주님을 믿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음이 태산과 같다.”고 하였다. 또한 체포되어 국문을 받으면서도 “제가 천주학 책에서 그릇된 것을 한가지도 발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비록 죽을지라도 절대로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한다. 그는 비록 세례를 받지 못하고 참수당하였지만 샤를르 달레 신부님은 그가 순교로서 혈세를 받았다고 기록했다. 

세월의 흔적은 빌딩숲 사이로 사라져 버려서 찾을 길 없지만 주님만을 향해 굳건하게 신앙을 지켰던 그분들의 믿음만이 현양탑이 되어 하늘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우리가족은 일신의 안녕을 모두 버리고 자신이 찾은 진리를 위해 생명까지도 초연히 버렸던 성인들과 이름 모를 순교자들을 묵상하며 우리가족도 그 뜻을 조금이라도 따라가게 해달라는 지향으로 주모경을 바쳤다. 

가족 기도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맞은편 편의점으로 달려가 버렸다. 그 동안의 수고(?) 대가로 각자 배당 받은 천원을 갖고 편의점 순례(?)를 하고 온 아이들의 얼굴이 충만하다.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