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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재의 아름다운 정경을 마음에 담고 남한강 강물을 따라, 우리가족은 산수의 아름다움이 유명한 양평 땅 근처 양근성지로 향한다. 성지에 들어서니 조경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가 끝나면 아담하고 평화로운 정원을 가진 성지로 거듭날 것이다. 특히 시야를 사로잡는 남한강물의 넉넉함이 세상사의 번잡함을 다 가져가는 듯 하다.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진리의 바다는 결국 모든 것을 품어서 제 갈 길로 간다는 생각이 든다. 성인의 상을 가운데 둔 현대적인 조형품으로 만나게 되는 십자가의 길 14처가인상적이며 새로운 묵상으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이곳은 한국 천주교회의 기틀이 되는 당시의 대학자 권철신 암브로시오와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선조의 고향이며 초기 한국천주교회 선교의 중심이었다. 대학자 권철신의 명망으로 학문을 익히고자 찾아온 많은 선비들이 천주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중에서는 내포의 사도가 된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 최초의 순교자가 된 윤지충 권상현 등이 있다. 또한 권철신 선조의문하생으로서 1795년 주문모 신부님을 모시는 데 큰 역할을 한 윤유일 바오로 성인이 거주하던 감호와점들이 있는 곳이다. 그는 한국 천주교회의 첫 밀사가 되어 이승훈 선조가 북경 주교에게 보내는 서한을비밀리에 전달하여 가성직 제도의 잘못된 점을 밝혔다. 참으로 한국 천주교회를 뿌리내리는데 큰 업적을남긴 지역이 아닌가 한다. 이곳 양근 땅에서 관아로 끌려와 고문받고 참수당한 선조들은 신유박해 당시에적용되었던 '거주지로 압송하여 처형하는 법'에 의하여 윤유오야고보, 유환숙과 동정공동체 생활을 하였던 103위 성인인 윤점혜 아가타, 초기 한국교회에서 권철신, 일신형제와 함께깊은 연구 끝에 천주교를 받아들인 양반출신 권상문 세바스티아노가 순교하였다. 또한 윤유일의 삼촌 윤관수, 이재몽, 이괘몽 형제, 김원성, 이 아가타, 조용삼, 조상덕이옥사 하였으며 조숙, 권데레사 동정부부의 자취도 느낄 수 있다. 교회의 기록에 의하면 양근 땅에서 순교한 신자는 13분이 된다고 한다.
주말 미사시간에 맞추어 오면 성지순례도 하고 신앙의 증거를 간직한채 묵묵히 흘러가는 강의 전경을 편안히 살펴볼 수 있다. 현실의 삶이 지칠 때면, 간단히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벤치도 있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정원그네까지 겸비한 성지에 가자. 그러면 박해의 시기에서도 믿음을 증거하여 한국천주교회의 창설선조로 우뚝 서신 대학자 권철신, 일신 선조의 신심을 되새기면서 현재 삶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용기와 위로를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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