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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저 아래 숨겨진 감성 찾으러 떠나는 화순 하루여행(2/2)

햇살가족 일기

by 열우 2021. 2. 2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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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은 광주와 가까우면서 그곳 고유의 풍취를 간직한 특이하 곳이다. 고등학생 열차를 타고 갔던 봄소풍 기억이 전부인 그곳을 가보고 싶었다. 화순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위한 여행 코스로 정말 매력적인 곳이다. 

누가 심지 않았을 코스코스가 길가에 필어 지나가는 사람에게 가을 인사를 전한다.

지나가는 분께 화순역이 어디쯤이에요? 하고 여쭙자  옆으로 금방 걸어갈  있다고 한다.  사이 빗줄기도 굵어진다. 가까이 있다고 하니 걸음을 재촉하기로 했다. 하지만 계속 걸어도 이정표는 ‘화순역 직진’이다.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분들에게 여쭈니 한 정거장 더 걸어야 한다고 한다. 이미 바지는 빗물에 젖을 만큼 젖었고 점퍼 속 남방까지 물기운이 전해져 왔다. 

드디어 좌회전 이정표다. 마구 뛰었다. 역 입구 도로는 한적한 시골역 모습이었지만, 역 건물은 최근에 지은 것인지 새로운 느낌이 난다. 역사 앞으로 동아그룹 기업 심볼을 앞세운 대한통운 간판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줬다. 오래된 창고건물이 꽤 보였다. 예전 화순탄광이 있을 때만 해도 꽤 붐비는 역이었다고 한다.

역에서 표를 살 때, 비에 젖은 내 보습을 본 역무원께서 무척 안타까워하신다. ‘남는 우산이라도 있으면 주고 싶다’는 말이 너무나 고마웠다. 능주역이나 이양역이나 마찬가지로 2600원이란다. 이왕이면 이양역까지 가고 싶다고 했더니 이양역까지 갔다 오면, 어두워질 거 같다고 능주역 근처에 볼거리가 있다고 코스를 설명해 주신다.

10분 만에 능주역에 도착했다. 이곳 또한 한가하기는 마찬가지다. 역 주변으로 코스모스가 가을바람을 타고 흔들리고 있었다.

 

 

수수밭, 지석강과 엄마야 누나야

 앞에는  나무와 수수밭이 보였다.  십년간 보지 못했던 수수밭이다. 알이 영글어가는 수수밭이 반가워  역시 사진에 남겼다. 고향 생각이 나서 잠시 향수에 젖었다. 어느 쪽으로 가야 영벽정이 나오는지 몰라서 마음속에 그렸던 곳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반대편이란다. 역에서 그리 멀지 않다고 하여 걸어갔다. 굴다리를 지나 둑방길 하나를 지나 다시 철길을 지나자  멀리 영벽정이 있을 것만 같은 곳이 보인다. 정말로 영벽정이다. 시골 동창회를 이곳에서 하는 것인지 50 전후의 어른들이 윷놀이하며 즐거워한다. 조금 있으니 자리를 비우니 한가해진다. 이곳 또한 지석강 가에 있어 나무가 심어진 곳까지 물이 찰랑거린다. 영벽정 바로 뒤로 경전선이 지나갔다. 거기가 출사 포인트라서 사진 애호가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맑은 물이 흐를 때면 물에 반사된 철길이  그럴듯한 풍광을 연출하나 보다.

목이 말랐다. 영벽정 근처에 식당이 있어서 들어갔다. 할머니 때부터 운영해온 식당이라고 한다.병에  콜라  병을 주문해서 마시며 카메라 배터리 충전을 했다. 마늘 까는 냄새가 향기로웠다.

영벽정에서 가까운 화순 능주 메타세콰이어길

스마트폰에 저장해간 메타세쿼이아 길이 어디쯤이냐 하고 여쭙자, 둑길을 따라 걸어가면 된다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신다. 둑길이 나왔다. 둑길 옆으로 코스모스와 억새가 가을 바람에 하늘거린다. 같은 코스모스여도 시골 풍경 속의 코스모스와 시내의 코스모스는 다른 느낌을 줬다. 찬바람 속에서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지석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교각에 부딪힌 물소리가  요란하다.  멀리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이 펼쳐져 있다. 지나가는 차가 거의 없어서 도로 중앙 차선을 따라 걸어도 보았다.

사진을   찍고 나서 걸어가는데 버스가 다가온다. 버스에 타겠다고 달려가는데 친절하게도 중간에 차를 세워 주신다. 운전석 옆에 앉아서 풍경을 구경했다. 집지 표지에서  메타세콰이어 나무 촬영지점이 어딜까? 하고 계속 창밖을 이곳저곳 살펴보았다. 대도시 근처라서 그런지 조금 지나니까 아파트촌이 이어진다. 광주 지원동이 가깝다고 한다. 차에 올라타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영벽정 옆으로 흐르는 지석강가의 버드나무

남광주역에서 내리기로 했다. 아시아문화전당까지 충분히 걸어갈  있지 싶었다. 금동이라고 했다. 도청 뒤편으로 충무로 인쇄골목처럼 기념품 가게와 소형 인쇄·기획사들이 이어졌다. 도청이 무안으로 이전했지만, 그래도 인쇄업체들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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