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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관아 [의정부 1]

성지_햇살속으로/수도권

by 열우 2010. 8. 3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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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참고 도서에서 성지를 보았을 때는 황량하리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아이들과 함께 의정부 땅을 지나 양주시내로 들어가니 맑고 깨끗한 기운부터 우리들을 맞는다. 주소가 네비에 뜨지 않아 양주성지를 관할하는 성당에 전화를 걸어 위치를 파악하였다.

양주시청을 좀 지나니 관아의 푯말이 보였다. 주차하자마자 춘향이가 탄 것 같은 기다란 줄의 전통 그네가 보인다. 관아주변으로 전통체험장이 잘 갖추어져 있다. 시청의 홈페이지에서 전통체험행사 일정을 확인하고 오면 가족 성지순례도 하고 더불어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이곳은 불암산 올라가는 입구이기도 하여 주차장에서 1분만 올라가면 유양팔경()에 속하는 기당폭포가 있어 순례와 함께 가족 나들이로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왼쪽으로 보이는 양주관아 앞에 갔다. 이곳도 관공서로서 박해 당시 죄인들로 취급 받았던 신자들의 고문과 처형이 행해지던 곳이다. 기록에 의하면 양주지방 신자는 2분이고 3분의 용인 지역 신자까지 있었다고 한다. 마침 문화해설자님이 설명을 해주셔서 들으니 19세기 당시 양주목사의 권한은 무척 컷다고 한다. 수도북쪽 방위의 책임을 지고 있다 보니 다른 어떤 곳보다 그 행정권이 강하여 송파 쪽의 원님도 양주목사가 부르면 한걸음에 달려와야 했다고 한다. 그것을 입증하듯 관아의 오른쪽으로 양주목사비가 위세 있게 한 줄로 쭉 늘어서 있다

관아 앞에 서니 그분들이 관아에서 신앙 때문에 형벌을 받으며 아파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평범한 백성이었던 그들이 결코 하느님을 져버릴 수 없어서 고통을 달게 받고 결국은 시신이 되어 현재 양주시청 넘어로 달구지에 실려 가 버려졌다고 한다. 이곳 순교자 분들은 비록 현세에서는 목숨을 잃었지만 영생으로 가는 열쇠를 결코 놓지 않은 분들이라 여겨진다. 또한 관아 북쪽으로는 정조대왕이 행차하시여 3일간 머물며 민정을 살피고 잔치를 베풀며 사대에서 활을 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비석이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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