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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삼성인묘 “신앙의 자손들을 내려다 보시다” [의정부 2]

성지_햇살속으로/수도권

by 열우 2010. 8. 30.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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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관아를 떠나서 다시 의정부 시내를 거쳐 길음동 천주교회 묘지를 찾아갔다. 성인의 묘는 묘지 안에 가장 높은 자리에서 수많은 신앙의 자손들을 따사로이 내려다보며 의연히 자리잡고 있었다. 남종삼 성인은 병인박해의 소용돌이와 그 시작을 함께 하신 분이다. 백부였던 아버지의 굳은 신앙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지방관직에 있을 때는 목민관으로서 모든 이의 존경을 받았었다. 대원군이 정권을 잡으면서 좌승지로 발탁되었는데 마침 이때 러시아가 우리나라를 침범하려고 통상을 요구했다. 대원군은 영국과 프랑스와 동맹을 맺어 러시아를 견제하기로 생각하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프랑스 선교사들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이에 남종삼은 신자들을 대표하여 서한을 올렸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어 러시아의 위협도 사라지고 개방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천주교에 대한 탄압을 주장하면서 조선교회는 마지막으로 커다란 희생을 치르는 순교의 서막을 열게 되었다. 대원군에게 고향으로 내려가 있으라는 권유를 받고 묘재로 내려가 여든 살의 고령이신 아버지를 만나 자초지정을 말씀 드리니 죽더라도 성교에 대한 욕된 표현을 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는다. 그리고 서울 근처의 고양 땅 잔버들이라는 곳에서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으나 꿋꿋히 참았고 주님을 믿는 것이 옳은 일이기에 그렇게 했다.”고 당당히 신앙을 증거하셨으며,1866 3 7일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참수되셨다.

이곳에서 성인을 두 번째 만난다. 강화도의 일만위 순교자 현양동산에서 성인의 유골을 먼저 만났는데 이제서야 묘를 찾아 인사 드린다. 성인은 세상의 권세를 가질 수 있었지만 신앙인의 본분을 잃지 않음으로서 일시적인 영화가 아니라 120년 뒤의 신앙의 후손들에게도 존경을 받으시는 삶을 사셨다. 또한 성인의 순교 후, 부친도 공주 옥에서 옥사하시고 아드님은 전주에서 교수형으로 부인도 창녕현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하시니 순교의 가문을 이루셨다. 소낙비가 퍼붓는 데도 끝까지 엄마를 따라 올라와 무덤을 참배한 막내를 하느님께 봉헌하며 성인의 전구를 부탁 드렸다. 내리는 비로 조금 미끄러운 경사 길을 둘이 꼭 손을 잡고 올라왔었다. 천주교 묘지는 안개에 싸여 있어 주변경치를 자세히 못 보았지만 양주의 맑은 기운과 함께 같은 믿음을 지닌 분들이 모여있는 외롭지 않은 안식처였다. 성인의 무덤을 참배하며 진실로 옳은 일에 최선을 다하신 그 분의 뜻을 배우려고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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