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에서 영성으로> 첫장에 나오는 이어령씨의 기도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1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꽃 한송이 바친 적 없으니
절 기억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
그리고 처음 바다에 물고기들을 놓아
헤엄치게 하셨을 때
저 은빛 날개를 만들어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를 때
하나님도 손뼉을 치셨습니까.
아! 정말로 하나님
빛이 있으라 하시니 거기 빛이 있더이까.
사람들은 지금 시를 쓰기 위하여
발톱처럼 무딘 가슴을 찢고
코피처럼 진한 눈물을 흘리고 있나이다.
모래알만 한 별이라도 좋으니
제 손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아닙니다. 하늘의 별이 아니라
깜깜한 가슴속 밤하늘에 떠다닐
반딧불만 한 빛 한점이면 족합니다.
좀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때묻은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리고 그것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속을 풍금처럼 울리게 하는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
20대에서 30대를 넘어오면서 "시"라는 영역이 내게서 멀어졌었다.
일상의 삶이 분주하기도 했지만
아마 점점 무디어진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즈음 글쓰기를 새롭게 시작하면서
시에 대해 다시한번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함축적인 언어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시에서 산문의 기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시는 오랜 세월 무신론자를 자처했지만
결국은 신께 대화를 청하는 인간의 고뇌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얼마전 이어령님의 장녀 이민아씨가 별세하였다.
아직 젊은 나이라 안타까움이 더한다. 하지만 그녀의 하느님을 향했던 열성적인 믿음이
그녀를 결국 구원하고 영원한 복락으로 인도했으리라 믿는다.
저세상에서는 눈물이 없는 그녀의 영원한 행복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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