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위 성인분들 중의 한 분이시며 1841년 4월 29일 47세의 나이로 서울 포도청의 옥중에서 교수형을 당하신 김성우 안토니오의 고향이며 무덤이 있는 곳이다. 또한 그의 신앙을 본받아 순교의 길을 간 일가친척 등 8분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구산(구산)이라는 지명은 마을의 뒷산 모습이 거북이의 모습을 닮았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초기 신앙공동체의 모습을 200여 년 가까이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곳이며 성지 한쪽에 수원교회사 연구소가 자리하여 선조들의 발자취를 현양하고 있다.
성인은 유방제 신부가 입국하자 서울에 집을 마련하여 성사를 자주 받았으며 모방신부님이 입국하자 자신의 집에서 한국말을 익히게 도와드리고 작은 경당을 지어 성사를 받았다. 성인의 두 동생분과 사촌 김주집은 남한산성으로 끌려갔으나 큰 아우는 옥중에서 병사로 순교하고 둘째 아우와 사촌은 석방되었다가 병인박해 때에 자식들과 함께 남한산성에서 순교하였다. 성인의 묘지 바로 옆에 한옥식 성당이 자리잡고 있으며 정성껏 관리되고 있었다. 성당 안에서 간단히 기도 드린 후, 박해시대 교우들이 생업으로 삼았던 가마를 굽는 옹기가마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아직도 남아있는 옹기가마를 보니 그 당시 교우촌의 생활이 떠올랐다. 박해시대에는 적은 자본과 공동체 노동으로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옹기를, 교우촌에서 많이 구웠으며 옹기를 팔러 이곳 저곳 다니면서 흩어진 교우들의 소식도 알아보았다고 한다. 지금은 이렇게 평화로운 성지이지만 살벌한 박해 시대에서도 가족과 친지들이 서로서로 나약해지기 쉬운 신앙을 북돋아주며 굳게 키워간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성지에서는 순교기념 성전과 기념관을 건립하여 성인과 순교자들의 믿음을 계승시켜 나가려고 하고 있다.
성지 입구에서 우리들을 맞아주시고 계시는 성모상은 특별하다. 구산성지와 구산성당 초대신부님이시며 성모님에게 특별한 신심을 갖고 계시던 故길홍균 이냐시오 신부님이 꿈 속에서 뵈온 성모님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한국 교회는 성모님과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김대건 신부님을 비롯하여 앵베르 주교님과 많은 선교사들이 조선으로 입국할 때 특별한 성모님의 보호하심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주보성인도 제2대 교구장이신 앵베르 주교님이 지정하신 ‘원죄 없으신 성모마리아’이다. 구산성지의 ‘우리의 도움이신 성모마리아 상”은 국내외적으로 하나 밖에 없는 성모상이며, 왕관을 쓰시고 지시봉을 들고 계시는 아름다운 성모님 상은 특별히 구산성지를 편안히 감싸주시고 계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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