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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은총을 만들어내는 나의 광합성

하느님을 사랑한 여성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6. 25.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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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믿는 사람의 호흡과 같으니 유혹을 당할 때에는 기도를 하여라!

믿음으로 기도하라 무슨 일이나! 간절하게 구하여라. 다 얻으리라.


이 노래는 밤 늦은 시각, 교구마다 열리는 철야기도회나 본당기도회 등에 참석하면 자주 들을 수 있는 성가다. 나 또한 부르다 보면 흥이 나고, 하느님의 축복을 미리 받은 것처럼 기뻐지기에 좋아하는 성가다. 차분한 그레고리안 성가도 좋지만, 이렇게 자신의 열정을 마음껏 표현하며 노래할 수 있는 복음성가도 좋다.


한번씩 마음이 건조해지거나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질 때, 찬양기도회에 가서 마음껏 찬양하곤 한다. 그러면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영으로 충만해진 느낌이 든다. 그러나 삶의 현장으로 돌아오면, 그 찬양의 마음을 계속 이어가기가 쉽지 않음을 곧바로 느끼게 된다.


세월의 무게에 더해지는 부끄러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고 윤동주 시인은 서시(序詩)에서 고백했다.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사는 것’이 무에 그리 어려울까 생각했다. 그러나 많지도 않은 마흔의 나이를 넘기고 보니, 한 점 부끄러움이 아니라 생각지도 못했던 중죄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직 ‘사는 게 죄지!’ 하고 한탄하는 할머니들의 연배도 되지 않았는데 참으로 난감했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라 스스로 위로하면서도, 앞으로 살아야 하는 삶의 무게가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떠올랐다.


“나는 내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로마 7,15)라고 고백했던 바오로 사도처럼 나도 이성과 마음으로는 이러이러한 생각과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다짐하지만, 어느새 내 마음과 몸은 그 다짐을 허물어 버리고 있다.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늘 나의 이기적 욕망이 선택의 1차 기준이 된다. 이 욕망의 문을 열고 선택한 것은 나를 행복하게 해줄지 몰라도,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하는 내 이웃의 행복까지 보장해 주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은 나 또한 행복하게 되지 않음을 이제는 확실히 느끼게 된다.


   

▲ 요당리 성지


은총을 만들어 내는 광합성


쥬디 카나토(Judy Cannato)는 그의 책 <경이로움>에서 137억 년 전에 탄생한 이 우주 역사에서 가장 경이로운 것 중 하나가 30억 년 전에 지구에서 일어난 광합성 작용이라고 한다. 50억 년 전에 탄생한 태양은 5억 년 뒤에 지구를 낳았다. 그리고 10억 년 뒤인 35억 년 전에, 드디어 최초의 생명인 원핵생물(핵이 없는 원시세포)을 지구에 태동시켰다.


그 후 이 원핵생물은 주변 물질들과 상호작용을 계속하여, 5억 년 후에는 자그마한 엽록소 분자를 만들었다. 이는 매초 자기 몸의 400만 톤을 빛 에너지로 바꾸는 태양의 빛을 포착할 수 있게 된 최초의 생명운동이었다. 엽록소가 빛 에너지(광자)를 흡수해 물 분자(H2O) 여섯 개와 이산화탄소 분자(CO2) 여섯 개를 더하면 물 분자와 함께 산소가 방출된다. 이때 나온 에너지가 아데노신 3인산(ATP)이라는 설탕으로 전환돼 모든 생명체의 에너지원이 된다. 이 광합성을 통해 지구는 초록의 에너지로 뒤덮이게 됐고, 그것을 먹이 삼아 양서류 · 조류 · 파충류 · 포유류가 생겨났다. 그리고 15만 년 전에는 드디어 ‘생각하는 사람’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다.


      빛 에너지 + 6H2O+6CO2 → C6H12O6+6O2


기도도 이와 같다. 내 마음의 원의(原意)가 빛이신 주님을 향할 때, 그 빛은 이산화탄소처럼 독이 되는 어두움을 흡수해, 생명을 주는 산소로 바뀐다.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삶의 블랙홀에 빠지더라도 단 한 가지 희망은 있다. 블랙홀을 와해시킬 수 있는 열쇠인 호킹복사(Hawking radiation, 스티븐 호킹 박사의 이론)가 일어나면 된다. 아원자 입자(subatomic particle)의 한 쌍 중 하나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지만, 나머지 하나는 바깥으로 방출된다. 복사(輻射)의 또 다른 이름은 빛이다(<경이로움>, 주디 카나토, 194쪽). 즉 빛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희망하고 의지하면, 중력의 당김이 너무나 크기에 그곳으로부터 결코 빠져나올 수 없다는 심연의 블랙홀에서도 빠져나올 수 있다.


   

▲ 요당리 성지 묵주기도 길


삶으로 바치는 기도

기도는 이처럼 생명을 준다. 빛이신 예수님을 만나면 생명을 주는 산소와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다. 내 마음의 초점이 빛이신 주님을 향해 있을 때, 우리는 어두움을 내어놓고 생명을 받을 수 있다. 엽록소를 가진 식물처럼 가족과 이웃과 타인의 생명을 살리는 토대가 되어 줄 수 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도 결국은 나를 내어놓는 사랑이었다.


김용택 시인의 <어머니>라는 책을 보면, 시인이 무심코 베어버린 마당의 나무줄기를 당신의 어머니가 정성껏 이어주며 간절히 기도하는 내용이 나온다. 어머니의 기도에는 이론적 하느님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작은 생명이라도 소중히 아끼는 마음이 들어 있다. 이 마음과 행동이 바로 훌륭한 기도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조상들은 예로부터 ‘하느님이 누구신지’ 학자들처럼 정확히 표현할 줄 몰랐지만, 생명을 존중하고 그 사랑을 몸소 베풀었다.


가정에서 아이에게 성적이나 행동에 대해 내 생각을 강요하면, 아이는 눈물을 흘리거나 반항한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내 욕심만 강요하기에 그런 것 같다. 나의 이기심에 앞서 또 하나의 생명인 자녀와 이웃을 존중하고 배려함이 바로 기도가 아닐까 한다. 내가 예수님을 향해 눈을 돌리기만 하면 초속 30만 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려오는 빛이신 성령에 힘입어, 우주에 생명을 주는 기도의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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