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밤 하늘로 동화 속 예쁜 집이 떠오르고 그 안에서 요정들이 아름답게 춤을 췄다. 내가 사는 도시의 가을 축제 하이라이트 공연 가운데 하나였던 <마법의 숲>을 보았다. 10번 넘게 참석했던 이 축제가 올해는 내 삶의 축제로 다가왔다. ‘프로젝트 날다’의 <마법의 숲> 공연에서 하늘을 나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몸짓을 보면서 답답했던 내 마음이 뻥 뚫리고 함께 ‘훨훨’ 날아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줄에 매달려 20~30미터 높이를 오르내리며 하늘에서 신나게 춤추고 ‘꿈을 즐기라’고 외치는 그들의 무대는 감동적이었다.
사진: '마법의 숲'_본문 이해에 도움을 드리기 위해 '프로젝트 날다' 카페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인생은 예측 못한 변수의 연속
추석 연휴 다음의 한 주는 “인생은 나라는 존재가 외부와의 경계선에서 만나는 예측 못한 변수의 연속”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했던 기간이었다(안도균, <몸과 세계의 의학적 조우, 동의보감> 참조). 삶이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 주면 좋으련만, 그게 쉽지 않음에 다시 한 번 ‘받아들임’이라는 단어를 떠올려야 했다.
지난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겪었다. 감추고 싶었고 잊고 싶었던 지난 실수가 가족들 앞에서 공개된 것이다. 마치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루카 8,17)라는 말씀처럼….
이를 계기로 생채기 난 나의 가슴에 새살이 올라오도록 자신을 다독여야 하는 과정을 생각하니 삶이 다시 한 번 무게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배우고 깨달았던 문제 해결의 정답인 “내 탓이오, 내 탓이오!”를 떠올리며 상황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이 또한 마음먹은 것만큼 쉽지 않았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가을을 보면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솔로몬 반지에 새겨진 문구를 되뇌어도 마음은 계속 흔들렸다.
마침 새로 시작한 성서 공부반에 가서 열심히 말씀도 찾아보고, 지역 철학 강좌의 초대 손님으로 오신 스님 말씀을 들으며 마음을 다잡아보려 했다. 그분은 우리들이 몸담고 있는 이 중생계의 삶을 탈피해 열반의 삶으로 들어가려면, “나와 남이 타인이 아니라 우주적 근본으로 한 뿌리임을 깨달아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는 높은 의식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설명하셨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니 내 가슴의 생채기는 더 세게 아려온다.
유희하는 인간
살아가다 보면 상황에 맞는 다양한 치유책이 필요함을 느낀다. 나의 이번 마음의 생채기 치유책은 ‘호모 루덴스’, 즉 유희하는 인간이 아니었나 한다. 울고 웃으며 축제를 즐기는 그들과 함께한 순간, 나의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는 것 같았다. ‘그래, 인생은 어차피 한바탕의 꿈! 그 속에서 열심히 살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삶은 순간순간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진: 요한 하위징가_본문 이해에 도움을 드리기 위해 위키피디아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설, 정월 대보름, 오월 단오 등 절기마다 우리 조상은 차례를 지내고 함께 즐기며 살았다. 힘든 노동을 이기고 나면 공동체가 함께 어우러져 서로의 모자람과 풍요함을 나눴다. 모든 인간의 종교의식도 이러한 삶의 고비 고비마다 얽힌 축제와 무관하지 않다. 생로병사, 희로애락의 순간마다 음악과 무용, 미술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고 위로 받으며 희망을 찾았다.
플라톤의 <법률>에는 신들이 슬픔을 안고 태어난 인간을 동정하여 그들이 고민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휴식을 취하도록 추수 감사 축제를 정하고, 뮤즈의 수장인 아폴로와 디오니소스를 보내 인간의 동료로서 어울리게 했다고 나온다. 이러한 신들의 참여로 인간 사이의 질서가 회복되었다는 것이다(요한 하위징가, <호모 루덴스> 참조).
<마법의 숲> 공연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운명처럼 이끌려 마법의 나라로 간 주인공이 요정들의 삶에 뒤섞인다. 마법의 나라 공주님을 만나고 사랑에 빠지기 직전, 짓궂은 요정들의 장난으로 공주님은 달아나 버리고 그는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사진: 장자의 호접몽_본문 이해에 도움을 드리기 위해 위키피디아에서 인용하였습니다.
그가 받은 마지막 메시지는 “꿈을 즐겨라!”였다. 나비로 온 세상을 날아다니다 한 순간 잠에서 깨어난 장자도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나비였는지 나비가 나였는지 모르겠다’고(장자, <호접몽> 참조). 그러니 우리도 주어진 이 삶을 열심히 사랑하고 즐겨야 할 것 같다.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기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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