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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 사랑

순례길의 여정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9. 8.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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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결혼하여 처음 맞이하는 추석 때였다. 낯선 남도의 시댁에서 조심스러워하고 있을 때, 아랫집 아주머니께서 당신 마당에서 따온 무화과 한 개를 아내에게 주었다고 한다. 이름을 많이 들어봤지만, 실물을 보기에는 처음인 신기한 먹을 거리였다. 꽁지에서는 하얀 진액이 흘러나오고 있었을 것이다.

처음 맡아보는 이국적인 향기에 달콤한 맛에 반한 이유 때문인지 아내는 무화과 얘기를 자주 하곤 한다. 서울에서도 정원수로 심어놓은 무화과 나무를 볼 수 있지만, 해풍이 묻어나는 따뜻한 남도에서 자라는 무화과 나무의 생명력은 느낄 수 없다. 

목포에서 강진쪽으로 가는 2번 국도변을 달리다 보면, 늦은 여름부터 유난히도 무화과를 팔고 있는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영암 숙소에서 목포 산정동성당 순례지로 이동할 때, 묵주기도를 하던 아이들의 엄마가 갑자기 기도를 멈춘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조금 지나니까, 무화과 생각이 너무 간절한 나머지 분심이 들어서란다. 이 정도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참새가 방앗간을 스쳐갈 수 없듯이 차로 변의 무화과 가게 앞에 차를 세우고 시세를 알아본다. 조그만 것 한 박스에 2만원. 이럴 때면, 항상 고생하며 키운 농부들의 입장보다는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래서 혹시 ‘팔기에는 애매한 무화과가 있으면 그걸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제 짓무르기 시작한 무화과 박스를 꺼내오신다. 만 원어치를 달라고 했는데, 조그만 스티로폼 박스 하나 가득 주신다. 우리 다섯 가족이 충분이 맛보기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이들에게 맛보라고 했더니 셋 모두 싫은 기색이다. 목포에 이르기까지 둘이서 몇 개를 나눠 먹고 나머지를 박스에 조심스럽게 보관하여  이동했다. 그날 저녁, 숙소였던 김제 수류성당 동네분들에게 이바지로 드렸더니 정말 좋아하셨다.

무화과는 저장성이 떨어지는 과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원산지가 먼 곳에서는 만나기 어려웠을 거고, 주로 중동지역에서 수입된 말린 것들을 맛보는 정도였을 것이다. 나무에서 막 딴 잘 익은 무화과를 절반으로 쪼개보면, 신기한 속살 빛에 놀라고 이국적인 향기에 반하게 된다. 한 입 깨물었을 때 전해오는 달콤한 맛과 향기를 뭘로 설명해야 할까. 달콤한 맛은 다래에서, 향기는 장미꽃에서, 색깔은 석류에서 왔다고 하면 연상이 쉽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성지 순례길은 문화여행이기도 하다. 선조들이 걸었던 옛길을 직접 걸어보면 가장 실감 나겠지만, 그들이 오갔을 길가의 특산물을 맛보고 접하는 것도 그들의 숨결에 가까이 가는 방법이자, 하느님의 축복을 직접 체험하는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달콤하고 향긋한 무화과 냄새가 그립다.
* 사진출처: http://blog.naver.com/hyangun68/11009290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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