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낮에 아이들과 동네 산책 겸해서 청계산 입구까지 다녀왔는데 저녁 때가 되니 머리가 가볍지 않다. 일요일을 의미 없이 보냈다는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누워 있어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어젯밤에 인터넷 도서관에서 대출해 읽었던 책 내용 때문이었을까? 이 시대 40대 가장의 어려움을 소개한 내용이었는데 읽고 나서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 기분이 머릿속에서 맴돌면서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일어나 아이들 방의 책꽂이를 간단히 정리하던 중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발견하였다.
범우사 문고판 1000원짜리 책이었다. 아마 2008년 초, 신림동의 헌책방에서 샀던 기억이다. 이 책에서 내가 왜 머리가 혼란스러웠는지를 알 수 있는 단서 하나를 발견하였다. 내용은 법정 스님께서 하동 쌍계사에서 당신의 은사인 효봉스님을 모시고 살 때, 50리 구례장에 다녀오며 <주홍글씨> 한 권을 구입해왔다고 한다. 그 책을 지대방(고방)에서 호롱불을 켜놓고 읽고 있을 때, 효봉스님께서 알고 당장 불살라버리라고 하셨단다.
(그 책을 불살랐던) “그때는 죄스럽고 좀 아깝다는 생각이었지만, 며칠 뒤 책의 한계 같은 걸 터득할 수 있었다. 사실 책이란 한낱 지식의 매개체에 불과하다는 것, 거기에서 얻는 것은 하나의 분별이다. 그 분별이 무분별의 지혜로 심화되려면 자기 응시의 여과 과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온갖 분별을 조장하는 그런 책이 정진에 방해될 것이기 때문이었다고 덧붙이고 있었다. '책에 짓눌리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내가 바로 책에 짓눌려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읽을 때는 뭔가 터득한 느낌이 나지만, 덮고 나면 허무한 생각까지 들고 하는 느낌은 나의 것으로 여과 하지 못하다 보니 발생한 현상이지 않을까? 그래서 계속 머리가 무거워지고 허전한 느낌마저 들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본다.
‘분별’이라는 단어에 어떤 뜻이 담겨 있을까? 무분별과 대조를 해보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구글 검색을 해보니 <불교저널>(http://goo.gl/5C26q)에서 이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분별에는 세속적 관점에서 대상을 취해 그것에 상상의 날개를 펴 호·불호(好不好), 가·부(可否) 등으로 차별한다는 의미가 있다. ••• 산란한 혜(慧)의 마음 작용을 본질로 해 판단하고 추리하는 작용이다.”
궁금하면 금방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보고 그것을 바로 취하는 나의 자세를 되돌아 볼 귀중한 만남의 글이었다. ‘자기 응시의 여과 과정’을 더 곰곰히 생각해봐야겠다.
<무소유>는 맑은 느낌이 그대로 전해오는 참 좋은 책이다. 1960년대 말에서 70년 대 초까지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했던 글을 모아 1976년에 처음 내놓은 것인데도, 내용은 하나도 오래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맑은 마음을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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