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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데가르트, 창조의 무한한 축복을 노래하다

하느님을 사랑한 여성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5. 2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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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데가르트, 창조의 무한한 축복을 노래하다
[하느님을 사랑한 여성들-5]
2012년 05월 22일 (화) 15:49:57도희주  susanna@mustree.com

“하나의 원이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감싸듯이, 
신성도 만물을 그렇게 감싸 안습니다.” 一 빙엔의 힐데가르트


작년 말 한국에 소개된 영화 <위대한 계시>(Vision, 2009년작)에는 특이한 장면이 나온다. 성당 제대 뒤에 십자고상 대신에 온우주를 창조하시고 돌보시는 하느님을 그린 ‘만다라’가 걸려 있었던 것이다. <위대한 계시>는 신비가이며 자연치료와 음악치료에 조예가 깊었던 힐데가르트 수녀(Hildegard of Bingen, 1098~1179)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다.


  
▲ 영화 <위대한 계시>에서 볼 수 있는 제대의 모습

만다라는 '깨달음을 주는 그림'으로 ‘내면 세계로 향하는 상징’을 의미한다. 원래는 ‘부처가 경험한 것' 즉, '우주법계의 온갖 덕을 갖춘 그림'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힐데가르트 성녀(이하 성녀)는 직접 36점의 그림을 그렸으며 우주를 바람과 불, 즉 에너지의 흐름이 살아있는 순환적인 구조로 이해했다. 성녀의 그림을 보면 후대의 과학자들이 밝혀낸 역동적인 ‘은하’의 모습과 비슷하다. 천 년 전에 미리 우주의 모습을 통찰한 성녀가 놀라울 뿐이다.


  
▲ 성녀의 작품 <생명의 순환>(왼쪽 / 출처: http://j.mp/JqMKja)과 휘몰아 치는 은하의 모습(출처: http://j.mp/JqN7tS)

성녀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덕망 높았던 은수자 유타의 양육을 받으며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성녀의 자연치유에 관한 글을 보면, 철저히 성서의 말씀에 뿌리를 두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치유의 마지막 절차에는 항상 주님께 의탁하며 병을 고쳐주시기를 청했다.

성녀는 “몸이 상하면 영혼도 상한다”는 깨달음을 전한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과 우주 안에서 오감을 통해 주님을 만나기를 권한다. 성녀는 평생의 고찰을 통해 하느님의 창조 행위 안에 숨겨진 넘치는 은총을 깨달았다.

인류의 타락을 끌어안은 삼위일체 창조자 하느님의 은총 속으로 들어가 보자.


삼위일체의 창조자, 하느님

  
▲ <창조가 일어나는 방법> (출처: http://j.mp/JqMGjr)
<창조가 일어나는 방법>이라는 성녀의 그림을 보면 무척 역동적이다. 성부는 혼자가 아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하느님의 얼굴이 놓여 있다. 그리고 독수리의 날개처럼 힘찬 날개를 가진 성령의 기운이 함께하고 있다.

예수님의 발 밑에는 인류를 유혹한 뱀이 짓밟혀 있다. 짓밟힌 뱀의 형상에서 이미 창조 때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히 축복해 주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그림은 삼위일체의 교리와 구원신학을 명확히 보여준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위를 감돌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하시자 빛이 생겼다.”(창세1,1-3)

“한 처음에 … 말씀이 계셨다. … 말씀은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었다. …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공동번역, 요한 1,1-5 참조)

즉 삼위일체와 구원의 신비가 창조의 행위 안에 모두 담겨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40여 년 동안 성당에서 자주 들었던 말이 있다. 특히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설명할 때다.

"대신학자인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삼위일체의 교리를 이해하려고 고민하다가 잠이 들었다. 바닷가에서 어떤 아이가 모래성을 쌓으며 그 모래성 안에 넓은 바닷물을 다 집어넣으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성인은 아이의 모습에서 무한하신 하느님을 인간의 작은 머리 속에 다 집어넣으려 하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따라서 ‘그냥 믿어라. 이해되지 않아도’라는 결론에 이른다. 물론 하느님의 무한함과 인간의 유한함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늘 마음이 답답했다. 그러나 성녀는 ‘하느님은 이미 온 세상을 창조하시며 우리 인간에게 당신의 뜻을 깨우칠 지성과 감성, 오감을 주셨음’을 깨달았다. 하느님께서는 자연과 온 우주 안에 숨겨 놓으신 당신의 뜻을 발견하고 이해하기를 원하신다.

힐데가르트 성녀는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자연 안에 두시되 
힘을 갖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창조계의 발판으로 감싸여 있습니다. 
우리는 봄으로써 세계 전체를 인식하고 
들음으로써 이해하고 
냄새를 맡음으로써 분간하고, 
맛을 봄으로써 양육되고, 
어루만짐으로써 다스립니다.

이렇게 하여 인간은 하느님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을 지으신 
장본인이시기 때문입니다.” 一 빙엔의 힐데가르트


원죄를 넘어 축복의 은총으로

하느님은 창조의 7일 동안 “보시니 좋았다”라며 끊임없이 감탄하신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에게 복을 내리시며 말씀하신다(창세 1,27-30 참조).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 바다의 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 모든 생물에게 온갖 푸른 풀을 양식으로 준다.”

이 우주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을 성녀는 우주만물을 향한 그분의 ‘창조적 사랑’으로 깨닫는다. 이 사랑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처벌을 두려워하며 웅크린 죄인이 아니다. 죄를 지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130억 년의 역사를 가진 우주를 만드신 하느님이 누구보다 우리 인간을 사랑하셨음을 깨닫는 것이다. 하느님께 불순종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 이미 받은 창조의 축복을 기억해야 한다. 

녹색의 생명력(viriditas)을 삶 안에서 실천

성녀는 환시 안에서 ‘살아있는 빛’을 체험했다. 피조물은 하느님을 비춰주는 거울이며 서로를 필요로 하고 충족시키는 힘을 지녔다고 했다. 자연과 우주는 생명을 향해, 사랑을 담고 순환하고 있다.

  
▲ <우주 알> (출처: http://j.mp/JqMyjK)
그 힘이 바로 비리티타스(viriditas), 즉 ‘녹색의 생명력(green power)’이다. ‘비리티타스’는 지상과 천상, 육체적인 것과 영성적인 것의 이원성을 넘어선다. 즉, 엽록소가 태양의 빛 에너지를 받아들여 광합성 작용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자연계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만드는 것이다.

성녀는 우리들의 마음과 행동도 사랑을 담은 생명력의 빛 안에 놓아두자고 한다. 열린 마음으로 다른 이의 삶을 받아들이고 함께 성장해 가는 것이다. 그 생명의 빛과 사랑의 근원은 바로 육화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령은 그 작용이다. 작은 씨앗이 녹색의 생명력 안에서 커다란 나무로 자라난다. 우리도 악을 선으로 감싸 안으시는 그분의 사랑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 사랑으로 창조자 하느님께서 보시니 “더욱 좋구나!” 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무자비한 개발과 파괴로 신음하는 우리 주변의 자연, 그리고 우주는 나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자연과 우리는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 다음은 일천여 년을 앞서 미리 지구환경 파괴를 예언한 성녀의 말이다.


“본래 푸르도록 의도되었던 사람들에게 … 
하느님께서는 
그분이 보시는 앞에서 
온 세계가 순수해 지기를 원하십니다. 
지구는 상처를 입어서는 안됩니다. 
지구는 파괴되어서는 안됩니다…” 一 빙엔의 힐데가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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