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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보석' 노리치의 줄리안

하느님을 사랑한 여성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6. 2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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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보석' 노리치의 줄리안
[하느님을 사랑한 여성들-6]
2012년 06월 14일 (목) 09:21:29 도희주 susanna@mustree.com

신혼 시절 남편이 즐겨 하던 말이 있었다. "Don’t worry Be happy." 구체적인 해결책이 되진 않았지만, 많은 위로가 되었다. 가톨릭교회의 영성 안에서도 이러한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를 확신한 영성가가 있다. 그녀는 14세기 영국의 항구 도시 노리치에서 한평생 은수자의 삶을 살았던 평신도 여성, 노리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 1342~1416)이다. 그녀는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고픈 깊은 열망을 갖고 기도하던 중 30세에 16번의 환시 체험을 한다. 그 이후 죽을 때까지 그 환시를 묵상하며 줄리안 성당 옆 작은 집에서 지냈다.

 

 

‘동트기 직전이 가장 춥다’

 

   
▲ 노리치의 줄리안(복녀 율리아나)
그녀는 자신의 환시 체험을 <단문>(Short Text)과 <장문>(Long Text)이라는 책으로 남겼다. 책은 아름다운 문장과 명료한 논리를 자랑한다. 여기서도 “결국은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라는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를 거듭 강조한다. 크신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으로 노래한다. 이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보석과 같다. 그녀가 살았던 때는 흑사병이 만연하고 영국과 프랑스 간 백년전쟁이 한창이었을 때다. 교회가 분열과 부패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던 때이기도 했다.

겨울 밤, 밖에서 추위를 견디며 일하는 사람들은 ‘새벽이 오기 전이 가장 어둡고, 동트기 직전이 가장 춥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줄리안의 “결국은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라는 절대적인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는 이러한 시대의 아픔과 고뇌를 딛고 나온 것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이제 줄리안이 찾은 아름다운 보석을 우리도 함께 찾아보자.

 

선하신 하느님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로마 8,28)

 

   
줄리안은 바오로 사도가 선포했던 이 말씀을 깊이 체험했다. 즉, 환시 체험을 통해 선하신 하느님에 대하여 자세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줄리안은 “하느님은 온통 선하시고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며,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을 사랑하십니다”라고 말한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의 본질 또한 선이 된다. 하지만 불완전한 우리는 죄에 빠진다.

하느님께서는 죄에 빠진 우리에게 진노하시기보다 마음 아파하신다. 그분 안에는 사랑과 자비만이 있을 뿐이다. 하느님은 우리가 회개하기도 전에 이미 용서하신다. 용서보다는 화해를 원하신다. 하느님 앞에서 죄란 그분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잊어버리는 것과 그 사랑을 완전히 끊어버리는 것이다. 그녀가 계시를 통해 본 ‘주인과 종에 대한 이야기’에서 죄의 상태에 대해 잘 살펴볼 수 있다.

 

"종이 심부름 가다가 온몸이 도랑에 빠진다. 그는 낙심하며 이제까지 주인에게 사랑 받았고 자신도 주인을 사랑했음을 잊어버린다. 주인은 도랑에 빠진 종에게 큰 연민을 느끼며 은총으로 치유하고 보상해 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종은 주인의 이러한 사랑을 잊어버린다." (노리치의 줄리안)

 

여기서 주인은 하느님이며 종은 우리들이다. 하느님의 사랑과 지혜를 떠나지 않으면 우리의 수치와 상처와 실패는 치유와 성장의 가능성이 된다. 하느님의 선은 착한 마음과 행동이며, 이 행동은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아름답다. 줄리안은 “하느님의 선하심은 모든 피조물에 온갖 거룩한 활동을 충만케 하며 그 가운데 끊임없이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나는 만물을 통치하는 선이다.
나는 그대로 하여금 사랑하게 하는 존재다.
나는 그대로 하여금 열망하게 하는 존재다.
나는 그대로 하여금 열망하게 하고 바라게 하는 존재다.
이것이 나다.
모든 열망들의 끝없는 충족.” (노리치의 줄리안)

 

어머니이신 예수님

 

줄리안은 ‘어머니’라는 단어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예수님의 모성을 부각시킨다.

“너무나 아름다운 단어인 ‘어머니’라는 말은 그 자체로 너무나 부드럽고 자상해서 모든 사물과 생명의 참된 어머니인 예수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한테도 적용할 수 없는 말입니다. … 어머니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지만, 우리의 소중한 어머니이신 예수님은 가장 자상하고도 온유하게, 당신 자신이신 성체로써 우리를 먹이십니다.” (노리치의 줄리안)

어머니의 모성을 잘 표현한 동화가 하나 있다. 고(故) 권전생 선생이 실제 있었던 일화를 토대로 쓴 <엄마 까투리>라는 동화이다.

“새끼 일곱을 둔 엄마 까투리는 숲속에 불이 나자 뜨거운 기운에 자신도 모르게 날아오른다. 그러다 문득 두고 온 새끼들이 떠올라 다시 내려온다. 숲속은 이미 불길에 휩싸였고 아직 날지 못하는 새끼들은 엄마를 찾아 허둥대고 있었다. 엄마 까투리는 마음을 다잡아 새끼들을 자신의 날개 아래로 불러 모은다. 그리고 숲 속의 불길이 다 사그라질 때까지 꼼짝하지 않았다. 며칠 후, 한 할아버지에게 발견된 엄마 까투리는 새까맣게 타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그 검은 날갯죽지 아래에서 새끼들이 먹을 것을 찾아 쫑알쫑알 튀어나왔다. 먹이를 찾아 먹은 새끼들은 검게 탄 엄마의 날갯죽지 밑으로 다시 들어가 꼭꼭 숨는 것이었다.”

 

   
▲ 권정생의 동화 <엄마 까투리>
새끼 꿩들은 혼자 힘으로 살 수 있을 때까지 비록 뼈대만 남은 엄마 몸이지만, 그 속에서 보호 받으며 쑥쑥 자라난다. 줄리안도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격인 예수님을 이러한 위대한 모성을 지닌 ‘어머니’로 이해했다. ‘영과 육’을 가진 인간이 창조될 때부터 예수님은 본성상 우리의 온전한 어머니가 되신다.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 바쳐 원죄를 씻어 주시고, 세례성사로 거듭나게 하며 성체성사로 우리를 키우신다.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에 가득찬 섬김이다.

 

결국은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하느님은 줄리안에게 ‘개암나무 열매 안에 담긴 우주’를 보여주신다. 그 환시를 통해 줄리안은 하느님이 우리 인간과 우주를 영원히 소중하게 돌보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느님께서 나의 손바닥에 개암나무 열매보다 작은 무언가를 보여 주셨다. '이것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했는데, 하느님께로부터 ‘그것은 피조물이다’ 하고 대답하시는 말씀이 들렸다. 그것은 너무 작아서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열매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을 알았다. 즉 하느님께서 그것을 만드셨고 사랑하고 계시고 돌보시기 때문이다.” (노리치의 줄리안)

 

줄리안은 환시와 기도 생활을 통해 하느님은 창조하신 모든 것에 선하게 내재하심을 깨달았다. 또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끊임없는 사랑이 결국은 죄와 악을 이기고 승리할 것을 확신했다. 이 확신을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라는 절대적이고도 순수한 믿음으로 고백한다. 우리도 현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결국은 선으로 이끌어가시는 하느님을 믿고 창조된 모든 것을 선한 마음으로 사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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