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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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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8. 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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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경로로 김용택 님의 <어머니>를 읽었다.


인연 1

1982년 겨울.

2만 4000원짜리 나이키.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던 넷째 형 친구가 우리집을 찾아왔다.

그 형이 신고 있던 신발.

당시 중학생 내 납부금보다 비쌌던 신발.

그 가격에 놀라 댓돌 위의 하늘색 날렵한 날개 마크를 단 나이키를 보고 또 봤다.

그 형 고향이 바로 임실이었다.

밤 나무 감 나무 많은 고장.

그 형은 우리 집에서 김과 해초를 가져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사로 밤과 곶감을 소포로 보내왔다.

밤과 감이 귀한 바닷가 마을의 나는 언젠가 그곳에 가보겠다고 생각했다.




2002년

난 한 IT 벤처기업에 들어갔다.

거기서 홍보 마케팅 영업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본인 중심으로 생각하는 나는 스스로 영업과 맞지 않았지만

지방 출장이 많다는 게 그나마 나를 위안케 했다.

운전 중에 라디오를 들으면서 길을 달리면 마치 여행이라도 온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남들은 지방 출장 가려면 힘들겠다고 걱정했지만

난 힘든 줄 모르고 다녔다.

 

그때 순창군청에서 우리가 내놓은 꽤 값나가는 장비를 보자고 연락을 해왔다.

직접 시연도 하고 설명 해주러 내려갔다.

전주에서 국도를 타고 가는 길이 참 좋았다.

순창 읍까지는 전주에서 40분 정도 걸렸다.

중간에 옥정호도 지나간다.

이정표에 ‘임실’이라는 단어가 보였다.

그때 임실 나이키 형이 생각났다.

이로써 나는 바랐던 임실에 갔다.

 

인연 2

2010년.

회사에 다니며 야간 대학원에 다니느라 꽤 지쳤을 때였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나는 겉멋이 들었나 보다.

자신의 분야에서 고생해서 자수성가한 이들과 가까인 한 나는

마치 내가 그들인 것처럼 착각했던 것이다.

그것이 계기였을까?

난 언젠가부터 몸 담고 있던 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왔다.

그때가 바로 2010년

논문 학기였다.

회사 일도 논문도 쉽지 않았다.

남 탓도 했다.



어머니 1

혼자서 떠났다.

몇 년 전에 갔던 순창과 임실로.

수원역으로 가는 버스가

한 시간 넘게 걸리는 바람에 임실역에 서는 기차를 놓쳤다.

임실 근처까지 가는 열차를 알아봤더니 오수행 열차를 안내해준다.

임실역에 서는 열차보다 오수역에 서는 열차편이 더 많았다.

그 차 안에서 안양 딸네 집에 다녀오시는 돌아가신 내 어머니 나이의 한 어머니를 만났다.

그 어머니께서 바로 오수가 당신 집이라면서 반가워하셨다.

김밥도 나눠먹고 재미있게 얘기를 하면서 내려갔다.

오수역은 바로 주인을 지킨 충성스러운 개 이야기로 유명한 고을이었다.






그 여자네 집

오수 터미널에서 임실행 버스를 탔다.

40분 정도 시골길을 달려 임실 터미널에 도착, 거기서 덕치 근처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시골 시내버스에는 노인들밖에 없었다.

냄새가 났다.

언젠가부터 고향집 안방에 들어서면 나는 냄새.

그것이 노인냄새라고 했다.



거기에서도 진뫼 입구 마을 한 어르신을 만났다.

해가 기울기 시작한 오후 너다섯 시 무렵 차를 여러 번 갈아타서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고 보니 내 차를 갖고 여러 번 지나다닌 곳이 아닌가.

마을 입구 전방에서 함께 간 어르신께 담배 한 갑을 사드리고 헤어졌다.

국도에서 가까운 마을, ‘그 여자네 집’이 있는 마을이었다.

10분 정도 강길을 따라 걸어가니 김샘 댁이 자리한 진뫼가 나왔다.

사진에서 여러 번 봤던 느티나무는 아직 싹이 나지 않은 채 늠름하게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마을은 개발의 손길을 피해 잘 보존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시골을 고향으로 둔 내가 그곳을 찾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순창군청을 드나들면서 알게 된 그곳의 순수함과 김샘의 책 때문이었다.

면 소재지인데도 70년대 분위기가 나는 모습이 정말 정겨웠던 것이다.

산골 사람들이 그렇듯이 사람들도 무척 순수함이 느껴져 왔다.     






어머니 2

2009년에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도

김샘의 책을 읽어드리면 좋아하셨다.

나의 어머니는 맑은 가을날 하늘나라에 가셨다.

어머니가 가신 후로 알게 모르게 마음의 감기를 앓았다.

나는 진뫼에서 책의 주인공을 직접 만났다.

찾아온 손님에게 물 한 잔을 주셨던 분.

연륜과 총기가 동시에 느껴지는 분이었다.

도시에 사는 분이라면 세련된 분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순수하면서 나름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계시는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된장국

진뫼 김샘의 집 뒤꼍에서는 뭔가를 보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부르신다.

옆, 아마도 책 속 인물로 만난 ‘용조 형’ 집에서 저녁을 준비하였다고 먹고 가라고 하신다.

디퍼리를 넣은 시래기 된장국이 정말 구수하고 맛있었다.

잘 익은 된장과 시래기에서 우러난 맛,

디퍼리의 담백한 맛이 어우러진 오랜만에 된장국 같은 국이었다.


 

된장찌개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다시 찾은 맛.

"울고 들어오는 사람 웃고 나가게 해야 혀,

웃고 들어온 사람 울고 나가는 집은 못써!

예부터 집에 손님 찾아왔는데, 냉수 한 그릇 대접 안 하면 집 대들보가 운다고 혔제."

그들만의 규범과 법이 있다.



밤길

저녁을 먹고 커피까지 한잔 먹으니 벌써 어두운 밤이다.

그 밤길을 걸어서 국도 변까지 나왔다.

숙소까지 걸어가려면, 어두운 밤길을 더 걸어야 한단다.

산밑 무덤가를 지날 때면 온갖 생각이 떠올랐지.

이 길에 여관이 없고 공동묘지가 나오면...


 

겁 많은 아자씨.

다행이 여관을 발견했다.

안 주인이신 분께서 김샘 동창이라고 하신다.

근처에 가게가 없어 캔맥주 한 병을 그냥 주신다.

순창읍에서 산다는 당신의 아들과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

방에 올라와 TV를 켰는데

KBS에서 김샘 특강 하네!

오늘은 아주 김샘 데이다.

 

다음날

나는 덕치초등학교로 갔다.

가는 길에 아침을 먹었다.

어제 저녁을 잘 먹어서안지 아침이라서 그런지 잘 넘어가지 않았다.


 



덕치초등학교는 김샘이 30년 넘게 근무하신 곳이다.

아직 벚꽃이 피어나지 않았는데

멀리 떠난 그곳 출신 학생들이 벚꽃 피는 날에 찾아오기로 했다고 학교에 왔다.

저 멀리 포항에서.

거기서 그 마을 출신인 또 다른 선생님과 무슨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다.

덕치초등학교 바로 앞 강을 건너 월파정이 있는 곳으로 걸었다.

박씨들 묘소 앞에 세운 정성이 들어간 정자였다.

월파정이 김샘 책 몇 곳에서 등장한다.

그곳을 지나 다시 진뫼 마을 앞 징검다리에서 담배 한대를 피우기 위해 들었던 라이터가 물로 떨어졌다.

그 라이터를 잡으려다 물에 풍덩!

젖은 신발로 천담 마을까지 걸어야 한다.


흙길

정말 멋있는 길이었다.

포장되지 않은 길로 가끔 덤프 트럭이 지나가며 먼지를 휘날렸지만 걸을 만 했다.

중간에 보슬비가 내린다.

벚꽃보다 먼저 핀 매화꽃이 빗물에 떨어지고

멀리서 검은 염소들이 노는 모습이 좋다.

강물은 예전보다 맑지 않겠지만 그래도 푸르게 흘러간다.

동북 쪽으로 흘러가다 다시 진뫼 마을 뒤편부터는 남쪽으로 흘러가는 형국이었다.

'아름다운 시절'을 촬영한 마을에 도착했다.

중간에 개 한 마리가 1Km 넘게 나와 걸어줬다.

새로 난 트래킹 코스를 따라 그 개와 함께 걸었다.

나를 놀리듯 안 보이는 곳까지 달려가서 기다리곤 했다.

눈이 무척 순해 보이는 개였다.




그도 사람이 그리워 나랑 함께 걸었을까.

그 개와 걷다 보니 젖은 운동화 때문에 물집이 잡힌 것 같은 발이 아픈 줄 모르고 걸었다.

이제 도착했다.

영화 '아름다운 시절' 촬영 마을이란다.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전반적으로 밝은 느낌보다 어두운 느낌을 받았는데

마을은 영화 분위기와 다르다.

꽤 높은 곳에 자리한 저 아래로 유유히 흘러가는 섬진강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을이다.

20채 정도 되는 작은 마을.

배가 고파 동네 가운데 마을회관에 들러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는 집이 없는지 물었다.

마침 점심을 드신 마을 할머니들께서 국수가 남아있다고 말아주셨다.

감사하다고 맛있는 거 사 드시라고 몇 만원을 내놓고 나왔다.

그 자리에서 김샘 얘기를 들었다.

김샘보다 어머니가 더 야물 딱진 분이라고들 했다.

시골 사람들은 근처 몇 십리 마을 사람들까지 알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지금처럼 도시 중심으로 생활이 형성된 것이 아니라

먼 곳까지 걸어 다니고 산에서 대소사에 만나다 보면 얼굴도 알고

이 마을 저 마을 소식들도 알게 되는 것이다.

살아 있는 대면 커뮤니케이션의 힘이다.

이젠 시골에 가도 사람 얘기보다 돈 얘기를 많이 하는 시대다.

사람 얘기보다 수단 얘기가 많다.

 


어머니 3

김샘의 고향 마을인 진뫼(장산)는 임실읍보다 순창읍이

더 가까운 국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아주 평화로운 마을이다.

특히 김샘의 집은 정말 좋은 터에 자리잡고 있었다.

좋은 자리인지 나쁜 자리인지 알아보는 능력은 없지만






마루에 앉아서 내려다 보이는 섬진강과 주변이 참 평화로웠고 집이 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섬진강 상류에 속하기 때문에 강 너비도 개울가보다 조금 넓다고 해야 할까?

앞뒤로 산을 둔 마을이지만, 앞에 강이 흘러가기 때문에 답답한 느낌이 나지 않았다.

김샘의 집은 샘의 아버지께서 직접 지으신 거라고 했다.

오래된 집이지만 시골집치고는 멋을 낸 튼튼한 집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기둥도 둥그런 원목을 그대로 썼고, 수장을 중심으로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부분에

무늬 유리창을 둔 점도 당시로선 꽤 정성과 멋을 낸 느낌이 났다.

그 어머니가 마치 우리 어머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들 기르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했던 분.

어려움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오신 분들.

모습 그대로 존경스럽고 마주 보고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포근해지는 그런 사람.

그 분을 언제 한번 다시 뵈러 가고 싶다.


어머니라는 책은 김샘이 당신 어머니께 올리는 선물 같은 책이다.

이 책 내용은 그동안 한번쯤 봤던 내용도 발견된다.

언젠가는 이런 책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그동안 김샘 책에서 어머니만큼 자주 등장한 인물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김샘도 이 책을 완성하고 마음의 짐을 조금을 덜었으리라 생각된다.

"어머니와 인터뷰" 부분은 보고 또 봐도 정겹다.

이것이 김샘 글의 힘이지 않을까!

먹고 또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과 같은.

황헌만 작가의 꾸밈 없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진은

화장하지 않은 사진 그대로에 가깝다.


 

김 샘의 어머니를 직접 만나 뵀던 나는 그 상황을 상상하며 맛나게 읽었다.

나는 김샘 책의 최대 장점은 꾸밈 없다는 점이다.

김샘의 이런 솔직할 수 있는 용기가 당신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섬진강 진뫼 마을처럼 순수하고 따뜻한 느낌이 그의 책에서 묻어난다.

도시에서 살면서 이런 책을 쓸 수는 없다.

도시에서 사는 이들의 책에 둘러 쌓여 사는 사람에게 이런 책은 단비와 같다.

며칠 후 만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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