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편 : 지하철 2호선 신림역 3번 출구에서 152, 5517,5520번 시내버스로 15분
순례 포인트 : 세분의 묘소에 참례, 성지에서의 십자가의 길 및 야외미사 참례
내가 삼성산 성지 바로 아래 동네, 작은 빌라에 살기 시작한 것은 1989년 8월, 열아홉 살 때부터다. 뇌출혈로 왼쪽마비셨던 어머니는 한번씩 경련을 일으키셔서 아직은 어린 삼남매의 마음을 놀라게 하셨고 급히 강남성모병원으로 엠브람스를 타고 달려가곤 했다. 소년 소녀 가장 집안이라고 동네에서 십시일반 돈을 모아 생활비도 보태주었던 인정 많은 동네였다.
빌라에 살기 시작하면서 박도식 신부님의 ‘무엇하는 사람들인가’를 읽었고 하느님을 향한 회심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회심 후에 성경을 읽으니 그렇게 지루하기만 하던 성경말씀들이 ‘새록새록’ 골수에 스며드는 생명의 말씀으로 다가왔다. “이제는 그리스도가 나의 생의 전부입니다”라는 바오로의 고백이 저절로 마음에서 우러났다.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 때문에 성당의 레지오 단원 들이 자주 기도해 주러 오셨고 삼성산 성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걸어서 15분이면 갈 수 있는 약수터 바로 위가 한국천주교회사에 큰 획을 그은 세 선교사의 무덤이 있는 삼성산 성지였던 것이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시는 어머니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고 늘 창 밖으로 성지를 바라보며 지냈다. 물맛이 좋았던 약수터 때문에, 그리고 운동한다는 이유로, 성지는 늘 내 옆에 있었고 익숙했다. 맑은 날이면 남산타워와 한강까지 보이는 삼성산 성지! 결혼하고 과천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꼬맹이들과 운동하러 올라 다니기도 했고 계곡에서 올챙이를 잡아와 개구리까지 키웠는데 풀어 주려던 전날, 도망쳐 버렸던 추억도 있다. 남동생이 결혼하고자 데리고 온 올케하고도 처음으로 가족 산책을 했던 곳이다. 낮 선 서울에서 의지할 곳 없는 우리 가족을 당신 친히 보살펴 주시고자 ‘이곳에 데려다 놓은 것이었구나’하고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깨닫게 된다.
성지에 있는 세 성인의 무덤은 기해박해 당시 훈련도감의 군인이었던 박바오로가 목숨을 걸고 앵베르 주교님과 모방, 샤스탕 신부님의 유해를 새남터 모래밭에서 찾아서 4년동안 노고단(현재 서강대 자리)에 암매장 하였다가 안전하게 자신의 선산인 관악산 기슭 삼성산에 모신 곳이다. 본래 이 고장에서는 ‘삼성산’이란 명칭이 고려 말의 명승 나옹 무악 지공 등이 수도한 곳이라는 데서 유래되었으나 묘하게도 이곳 한 자락에 19세기 초 천주교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세 명의 선교사의 유해가 안장되며 종교와 문화가 다른 성인분 들의 ‘만남 자리’가 되었다. 지금은 삼성산에 ‘성령수녀회’와 ‘피정의 집’이 들어서서 매일매일 기도의 전당이 되고 있다. 박바오로는 1868년에 순교하였고 그의 아들 박순집 베드로가 아버지와 같은 훈련도감의 군인이 되어 1866년 병인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하신 베르뇌 주교 및 여러 선교사와 신자들의 시신을 안장하는 업적을 이어가게 된다. 앵베르 주교는 성 정하상 바오로 집에서 우리말을 배웠고 모방, 샤스탕 두 신부와 함께 전교에 힘써 신자수의 급격한 증가를 가져왔다. 모방신부는 우리나라 사제양성에 힘써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등의 세 명의 신학생을 마카오에 유학 보내어 한국교회의 기틀을 닦으셨다.
앵베르 주교님과 모방, 샤스탕 신부님들은, 그 당시 조선에 오면 생명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리라는 현실을 잘 알면서도 목자를 목말라 하는 선조들의 뜻을 저버리지 않고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착한 목자의 길’을 걸으신 분들이었다. 이분들을 통해 선조들은 성사를 받고 신앙의 길을 확실히 갈 수 있었다. 나도 아직 외국인을 접하면 어색함을 느끼게 되는 데 200여 년 전, 먼 유럽 땅 프랑스에서 잘 알려지지도 않은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와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한 이분들의 믿음에 다시 한번 공경의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전 세 성인 분들의 후손들이 삼성산 성지와 본당을 방문한 행사가 있었다. 본당 교우들 중에서 몇몇 분이 자원하여 홈스테이 봉사도 하셨다. 참으로 뜻 깊은 만남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역만리에서 고통을 겪으시며 선교의 열정을 불태우셨던 그분들의 후손과 그 노고로 신앙의 씨앗을 잘 꽃피우고 있는 한국 교회 신자들간의 만남은 참으로 반갑고 의미 있게 여겨진다.
성지에서 늘 따뜻이 맞아주시던 성모님, 그리고 세 분의 성인들…
성지 산책을 준비하면서 한국 천주교회에 미친 이 세분의 노고가 얼마나 크셨는지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어려웠던 시절 성모님과 세 성인들이 누구보다 가깝게 내 옆에 계시면서 나를 위로해 주셨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지금처럼 앞으로의 내 인생과 아이들의 인생에도 늘 함께해 주시길 전구 드린다. 백일도 안 된 셋째 아이의 예상치 못했던 질병에 놀라고 있을 때 삼성산 성지 기도회에서 하느님께서 세 명의 아이들을 당신께 봉헌하고 당신 뜻에 맞게 키우면 현세의 어려움도 항상 보살펴 주시겠다’는 예언의 말씀을 듣고 큰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 또한 성지를 관할하고 있는 삼성산 본당의 모태인 신림동 성당의 벽면에는, 커다랗게 세 성인 분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어 신자 및 일반인들에게도 선교의 열매를 증거하고 계신다.
성지에 가면 늘 자신과 가족과 세상을 위하여 말없이 기도를 봉헌하고 있는 신자 분들을 많이 본다. 나 또한 성지에서 간절한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 커다란 나무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길을 바치는 믿음의 증인들도 가끔 본다. 그 마음 하나 하나에 주님께서 응답해 주시고 당신께서 원하시는 계획의 일꾼이 되도록 이끌어 주시길 기도해 본다.
성지에서는 삼성산 본당 교우 분들의 봉사로 준비되는 주일 성지미사(3월~11월)와 매달 21일 봉헌되는 월미사가 있다(변동사항은 본당 홈페이지 참조).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경험할 수 있는, 넓게 펼쳐진 하늘 아래 소나무로 둘러싸인 자리에서,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천상의 시간을 성지미사를 통해 가질 수 있다.
진무영(강화성당)/고려궁터 [인천 2] (0) | 2010.09.01 |
---|---|
강화 갑곶돈대 성지 [인천 1] (0) | 2010.09.01 |
절두산 성지 [서울 7] (0) | 2010.09.01 |
새남터성지 [서울 6] (0) | 2010.09.01 |
용산 성직자 묘역 [서울 5] (0) | 2010.09.01 |
댓글 영역